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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 마음을 알고자 한다고? / 2012.02.07. 21:13

category 2012년/2월 2024. 2. 12. 09:45

마음을 알고자 한다고?

2012.02.07. 21:13

나요

 

 

마음이 어디 있을까?

 

부처는 삼세의 부처들도

마음을 본 자가 없다 했으니 본 자는 없겠지?

 

그러니까? 결론은 있다는 것이야? 없다는 것이야?

 

있는데 부처도 보지 못한다 한 것이야.

 

없는 것을 찾으니 보지 못한다 한 것이야.

 

그라면 작살하고(이건 인도야)

 

카이샤파야!

너는 행 없는 마음을 행하여 마음의 상을 구하라

 

이건 뭔 소리야?

 

이 나라 절집(어염집)의 공양시간 전에 개경게를 하는데

 

개들 하는 대로 읊어보면

 

백천만겁난조우 ;

이것은 바보라도

백천만겁을 윤회하여 윤회 속에서 돌다가도

만나기 졸라 어려운 것이라는 거는 알 것이구.

 

무상심심미묘법 ;

위의 만나기 어려운 법이 있는데

이거이 마음속의 또한 마음을

미묘한 법이라 한 것이구

 

지랄? 여기서 보니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 속 마음이니 두개나 있네?^^

 

아마 유마가 이 말을 역설 했다면

人妄心(인망심) 道照之心(도조지심)이라 했을 것 같은데

 

다음은 뭐?

원해의 여래는 오직 진실해야 한다는 말이니

이는 여래진실불허와 같은 말일 테고

 

진실한 새꼉이 한테는

원하면 의세공결(부처의 심인)을 전한다 한 말이니

원아고득 득수지라 한 것이고

 

개 경~~~~~~~~~~~~~~~~~~~~~~~~~~~~~~게

 

문을 열 때는 개새끼들을 조심 하거라 하는 뜻이고

 

개가 중 이라고 앉아서 부처의 의발을 구한다 하는 뜻

 

확실히 위의 빗댄 내용만 보아도 마음이 있거늘

그 마음 한 번 보지도 못한 놈이 마음타령이라

 

우리네 집안에서 전하기를...

 

유마가 부처와 동시대 사람으로서

부처의 설법을 하고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아니하나

개들에게는 무척이나 몽둥이질을 했다 하더라.

 

그래도 부처는 항상 십대제자를 번갈아 가며

유마에게 여러 이유로 보내는데...

특히나 그 중에서도 더욱 멍청한 놈은

보내는 횟수가 잦았다 하더라.

 

유마의 본명은 우리네 집안에서는

노힐부 또는 천기노인이라 했는데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 보인 적이 없다하더라.

 

유마가 십대 제자들을 가르켜 말하기를

저런 대갈통들을 어떻게 가르켜서 하겠다고?

 

야! 대갈통부터 밀고

수행을 하던지 깨닫던지 해라(자식도 아니고)

이자슥 들아! ^^

 

왜 그렇게 십대제자들이 유마를 두려워했을까?

 

졸라 잘나가는 부처님의 고명제자들인데

 

유마경을 보면 대략하여 내용이 무슨 일인지 알만하다.

 

거사님~~

저희 부처님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병중이니

부처님께서 거사님께 잠시 오셨으면 합니다.

 

유마가(속으로는 요런 머저리 같은 새끼) 말하기를

‘부처란 금강신인데 어찌 병이 들 수가 있느냐?’

 

여기서 답은 딱 나와 버리는데...

 

부처란 ‘금강신’이다.

 

이 말은 한마디로...

노·사가 없는데 어찌 병이 들 수가 있다는 말이냐?

이 말인데...

 

멍청한 머저리들은 이말 뜻에서 깨우침을 얻지 못한다.

 

그러니 당연히 유마는 속으로

요런 머저리들이 부처의 제자라고

 

똥 폼만 잡고 다니면서

부처의 도를 배우려고 욕심만 차있는데

정작 배우려 한다는 부처가

누구인지 조차도 모르는 구나?

한 것입니다.

 

이 귀결은 결국 부처로 하여금

열반의 방편으로 떠나게 하고

 

이는 나도 너희들처럼 병들고 죽는다.

언젠가? 너희들도 이렇게 가는 것이니

너무 서러워 말지라.

 

당시 제자들은 당시 부처가 깨팔러 간 줄 알고

(속으로 부처님 같이 깨달으신 분도

결국 죽음은 어쩔 수가 없구나)

 

열심히 장례를 치렀을 것이고...

 

심부름 보낸 가섭만이 7일 만에 와서 보니...

어라? 이게 머야?

$$ 이런 눈깔 돌 일이?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당연히 가섭으로는

부처의 죽음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인데...

(뭐? 중생들같이 죽음에 황망한 것이 아니고

당시 누구보다 부처는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유일하게 알았던 가섭인지라

황망한 것이 믿지 못 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

 

그래서 가섭이 머라 말도 못하고

(우리 표현으로 하면

저만 알고 있는 것이니 벙어리 냉가슴 앓기 지)

 

관 주위만 빙글빙글 돌면서

부처님이 왜? 이리 했을까? 진짜로 죽었을까?

얼매나 많은 생각이 오갔겠는가?

 

이를 아는 부처님

(하~따! 저 자식도 되게 멍청하네?

야 임마! 나 안 죽었어!)

 

가섭의 행동을 보고 있다가...

 

그런데 죽었는데 어케 보고?

어디서 바라보고 있었을까?

 

헉! 귀신이 가섭에게 빙의 되서? 지랄 들...

 

가섭이

(부처님 그렇게 가시면 어케 만납니까?

그리고 어떻게 찾습니까?)

 

부처

(자식 걱정도 팔자다.

야! 재들 데리고 내가 앉은 불상하랴?

멍청하기는?)

 

가섭

(그래도 거룩하신 부처님도

죽었다하면 말이 많을 텐데?)

 

부처가 관 밖으로 발을 차냈다.

 

(야! 가섭아!

<세족이 아니고> 계족산에서 잠시 정에 들거라.

그거 3000년 금방 간다.)

 

(그리고 내 발 잘 봐라.

훗날 발을 보면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계족산은

지붕유설인 천학지붕으로 이 나라에 있다.

즉 내원의 외궁이다.)

 

(저 똥대가리들은 죽음이 죽음이 아니니

열심히 공부(수행)해라 하고?)

 

당시 결국 관 바꿔서 다시 입관했다.

 

당시 가섭이 있었던 때는...

부처가 부처로서 진 의발을 전했다면

가섭은 누구 손에 죽어도 죽게 돼있어.

 

다만 그리 방편 했다고 한다.

 

이는 달마 역시 마찬가지인데

육조 혜능은 결국 진종은 감추고 역시 숨었다.

 

이때는 아무래도 시연이 그러했나 보다

 

현대는 더욱 가관이다.

 

내 우리네 집안들이라 이거 어케 할래?

 

다들 웃어버린다. ^^

 

조계의 중들이 모시러 와서 잠시 조계에 있다 보니^^

중도 아닌데 중은 진짜 衆이 지만 ^^

 

이사람 시봉 들던 조계의 송씨 하나가

‘선생님 성불이 진짜로 있습니까?’

 

‘응!’

‘부처가 있다고 했으니 있겠지?’

 

‘어떻게 하면 성불합니까?’

 

‘그걸 부처한테 물어봐야지 나한테 물어보냐?’

 

‘나 불편해서 조계에 못 있겠다. 땡중들!’

‘근역으로 편히 쉴 만한 절 하나 준비해라’

 

‘근데 00는 법랍이 몇이지?’

 

‘50입니다.’

(당시 지금은 더 됐겠다.^^)

 

‘법랍이라 하는 게 아니라

승랍이라 하는 것이야 알았지?’

 

‘법랍은 현재 있는 중에 음! 보자~’

‘혜암 이라고 있구나.’

 

‘종정을 지내신분입니다.’

 

‘그들을 법랍이라 하는 것이야’

‘그들보고 부처라 하는 거야’ ^^

 

멀거니 얼굴만 쳐다본다.

 

‘왜? 내가 누구와 닮았어?’ ^^

 

‘부처가 대법륜좌에 앉아

세상의 윤회를 돌리는데 그 자리는 알아.’

‘이 나라에 있으니 지금은 자동 모듈 돌려놓고 비어있어’

‘인간도 컴퓨터 만드는데 거기라고 없겠냐?’

‘엄청난 용량이지!’

 

‘그곳에 가서 일주일만 앉아 있어라.’

‘그러면 성불 할 테니.’ ^^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쓸데없이 말 가지고 말장난 하면 그게 부처를 욕보이고

열반이네 해탈이네 해도 가는 길은 지옥이니

게송을 읊던 화두를 씹던

말을 삼가 해야 하는 것이라 몇 마디 개글 때려보네 ^^

 

어느 끈 떨어진 놈같이

노자 (우리 문중에 부처, 석존, 달마로 이어진다)가

도를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 하니

 

이것을 직역하는 놈이 있으니

대갈통 회로 회두 먹여 버리는 것이야. (돌)

 

대가리 회두 먹으면

도에 대서 헛소리하면 자기가 말하다가도

맥락이 끊겨 어!?? 내가 무슨 말했지?

 

내가 지금??

대가리 속이 멍해지는 것을 ‘회두’라 하는 것이야.

 

도라는 것을 말한 노자의 도를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는 말은

도를 파는 자들을 경계해서 한 말이며

 

‘패러독스’ 즉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