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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 깨달음 / 2012.02.11. 03:10

category 2012년/2월 2024. 2. 12. 09:44

카페 - 깨달음

2012.02.11. 03:10

나요

 

re: 깨달음을얻고싶습니다.

2012.02.10 21:56

 

깨달음은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습니다.

 

또한 깨달음에는 때·시가 있습니다.

 

깨달음은 경전에 있지도 않고

書(서책)에 있지도 않습니다.

 

수련에 있으나 때·시가 이르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깨달음을 얻지 못합니다.

 

때시가 이르면 이 나라부터 書(서)가 발간됩니다.

 

이 서는 천부에 비장된 서로

오래전 필사본이 전해진 바는 있으나

산본(원본)의 내용이 세상에 나온 적은 없습니다.

 

이것은 운회가 이르러야 그(종지의 주인)가 오며

그가 와야 숱한 세월의 윤회에서 수행하고 온 이들

(불가 선종의 보살 행자들. 선가 선종의 구도자들)이

그 종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래 이 종지는 이 나라에서는

‘현묘지도’라 하며 ‘풍류도’라 전합니다.

 

선유불 삼가의 본산이며

玄門(존재하나 알 수 없는 문)이라 합니다.

 

서가 발간되어 나타나도 ‘연’자는 서를 깨닫고

연자가 아닌 자는

백번을 보고 행해 봐야 수련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서’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도

‘연’자는 자연스럽게 서가 구해집니다.

 

수행에 이르면 자성을 보게 되고

자성의 불로서 확연하여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종지가 석존께서 말한 ‘일승지법’이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이 종지를

그저 ‘도’라 이름 할 수밖에 없다하여

‘도’라 한다고 했습니다.

 

삼천년 전에 백운당

(중국에서 전하는 발한당, 불가에서 전하는 영산회상)

에서 단 한번 있었던 일입니다.

 

선가에서는 이 종지를 ‘공결’한다 하였고

 

불가는 이 종지를 ‘공’이라 했습니다.

 

다만 보살도는 ‘원’을 구하는 것이 보살도입니다.

 

종교에서 전하는 ‘구원겁의 약속’입니다.

 

휴거 ^^ 휴거 일수도 있지요.

 

수행을 성공한 자들에게는 말입니다.

 

깨달음은 말로 말 따먹기 하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발간된 ‘서’를 보면은

바보라도

종교에서 선택 즉 印(인)를 받는 자들에 대해 말한 게

무엇이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됩니다.

 

그러나 연자 이외에는

보지 않는 게 좋은 書라서 천의가 미룬 것이겠지요.

 

살아온 세월에서

전에 부처라도 성인의 길을 걸었다 해도

지나온 세월 보게 되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연자는 스스로 거치고 가야되는 길들입니다.

 

이것을 ‘율’에 의한 ‘형’이라 합니다.

 

즉 ‘형벌’이지요.

 

최소한의 자신이 바르다하면

그리고 일념의 지향이 있어 그 길을 찾는 자들은

반드시 ‘욕’을 마쳐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종교의 예식으로

세례, 침례, 세수식과 같은 것으로

불가에서 전한 ‘염화미소’의 참 전래된 뜻입니다.

 

연자들은 과거와 달리

이미 10여년이전부터 헤매이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신’의 발동으로 인하여

일반적 무속에서 말하는 ‘신기’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수행의 과정에서 ‘형’을 치르게 되면

인간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참회 진언. 울고불고 하는 것.

그것으로 용서되는 형벌이라면

형벌이라 할 것도 없겠지요.

 

그러나 알게 되면 누구라도 참아내겠지요.

 

이런 것이 깨달음의 첫 길에 동반되는 ‘실상’입니다.

 

그러나 진짜로 이 길을 넘어서면

구현이 오르게 되니 ^^

신들이 발동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결국 연자 자신들의 ‘연계통보’입니다.

 

그래서 진실이란 때로는

달갑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연자가 수행에 들면 육도윤회의 과정까지 다 봅니다.

 

이때는 차라리

연자가 아닌 것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마 천번 만번도 더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에 이르러 진실을 알게 되면

그때 가서야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고

세상이 안타까운 진 연민이 스스로 우러날 것이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도 압니다.

 

이것이 바로 운회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어찌 깨달음이 책 몇 권 읽고 경전 몇 권 읽어

또는 믿음 하나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들 하는지

이러한 세태를 웃어야 할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랍니다.

 

^^겨자씨만한 그 말의 믿음이

여래가 진실하게 다 받치옵니다. 해도

비웃는 진실불허 인 것을...

 

상대가 ‘념’을 일어나기도 전부터

상대의 생각을 읽어버리는 게 ‘여래’입니다.

 

연자가 수행을 하면

진신사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기장 쌀알만 하고 즉 겨자씨만하지요.

기장쌀이 서숙이니까요?

 

중들 사리 그것은 정골 사리. 즉 ‘승’사리라 하며

이것은 ‘정’이 고이면 일반인도 나옵니다.

 

승사리가 하얀 백과이면

그제사 무구정광다라니를 수행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구요.

 

불가 ‘선종’에서는 수행을 다라니 수행 이라합니다.

 

이것이 바라밀다행을 가르키는 말이구요.

 

호흡에 의한 수련이라 이것을 ‘풍류도’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서수련이나 선가의 선도수련을 말해도

단 하나도 실상을 모르는 것이

운회가 안 되었는데 하는 수행이고

또한 수행의 운행이 ‘역’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이미 천부의 서간이 해석되어 났으니

연자들이라면 구하게 될겁니다.

 

이 서간을 보면 일반인도

모든 종교의 비밀과 거짓이 다 드러나

그들이 전한 경전이 이 뜻을 말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다 알게 됩니다.

 

이것이 진실과 거짓에 대한 규명이며

이때는 선가에서 말하기를 운회가 이르매

그 규각(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구나 한 것입니다.

 

^^산본에는 이 사람이 말투마저

육두문자나 불량스럽게 말하는 것 마저

오래전부터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늘의 뜻마저 부합되어 거슬림 없다는 것

그러나 연민하는 발로지

그대들에게 바랄 것이 무엇이고

원할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골육을 가지고 어찌 골육이 안타깝지 아니하고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의 인생이,

그 존재가 무엇이든 간에 어찌 안타까운 연민이 없을까?

 

그래서 항상 바르게 생각을 가지며 거짓 하지 말고,

자기도 모른 것을 안다함은 그것이 거짓입니다.

 

그렇지 못할 바에는

그저 즐겁게 살라고 한 것이 대부분이지 ^^

바보들! 해 가면서

 

연자는 수행하는 과정에서마저

바보들이라 한 이유를 아주 잘 알게 됩니다.^^

 

나도 바보거든 ^^

 

또한 수행은 바보가 아니면 수련을 하지 못한다는 것^^

 

똑똑하면 識(알 식)이야 헛 똑똑.

 

그러나 이것은 知(알 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식은 志(뜻 지)이며 志(지)의식은 息(숨쉴 식)이라하지.

이것이 자성에 들어가는

가장 기본적 智(지혜 지)란 것이구

 

대가리에 똥만 차.

차있는데 무엇을 담을거나? 직역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수상행식이 무수상행식을 말하나

수상행식의 식 마저 息(쉴 식)인데

 

그래서 도란 말로 전하는 것 아니고

말이란 글로도 다 못 전하나

다만 방편이며 지견해탈에 이르라 한 것입니다.^^

 

지견해탈은?

(알 식)을 息(쉴 식)으로 바꾸는 과정의 수련인데

수행자는 어차피 하면서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니

그나마 전에 쓴 글이라도 자세히 정독했다면

가는 길에서 많은 도움은 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