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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사람은 다른 깨달은 사람을 대번에 알아차릴수 있는지요?

2010-12-02 04:13

 

 

앎과 깨달음은 다릅니다.

지식과 인격적인 수행과 ‘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안다는 것은 말로 듣고 책에서 보고

나름의 ‘혜’가 삿되게 빠졌다면

이것은 눈치로 배율을 맞추는 것이겠지요.

 

결국 이렇게 아는 영혼은

스스로 허상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깨달음이란?

중생에게는 인격적인 수행이라 할 수 있으며

늘 상 깨우쳐서 정진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또한 깨우침이란?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흔히들 자성을 보라.

자성을 깨우치라 합니다.

 

이거이 말로 들어 아는 앎입니다.

 

삼세 이래로 모든 부처가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부처가 마음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자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불가의 도는 마음에 있으니

이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님들이 말하는 석가모니가

당시 제자 카이샤파(가섭)에게 직접 한 말입니다.

 

본디 선가가 구별을 달리하나

불교에서도 선맥을 말하면서 견성을 말했으니

이말인즉 너 자신을 돌아보라.

 

여기서 돌아보라는 말은

자기의 삶을 반성하고 뒤돌아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네가 누구인지를 알라는 말입니다.

 

이러함을 알 때

비로소 성불의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게 될 때는

누구라도 입을 다물 것입니다.

감히 삼세 제불도 입을 다뭅니다.

가히 할 말을 잃어야 정상입니다.

 

중생이 오가는 것을 알고

모든 부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도’라 이름한 ‘도’를 알고자하면

이렇게 자신을 보고 난 다음 자연히 알게 됩니다.

 

여래를 눈으로 보지 못하고 음성으로 듣지 못한다 함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다만 미혹하는 중생들 때문에

부처의 말은 부처만이 알아듣고

여래의 말은 여래만이 알 수 있다 한 것입니다.

 

답글 중에 불의 광명이 태양보다 밝다 한 말이 있군요.

당연합니다.

 

이러함을 일러 선가에서

사리 한 알의 광이 삼천대천을 삼킨다 한 것입니다.

 

이러한 불을 이루는 것이 성불입니다.

 

대그빡에 광채가 나면

그것을 보지 못하는 눈깔은 없을 것입니다.

 

‘불’과 ‘오라’의 형상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비유컨데 ‘불’이 태양이라면

‘오라’는 봄날에 피는 아지랑이 같이 가물가물하지요.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오라’가 있는데

인간의 생태(습)에 따라 ‘오라’가 다릅니다.

 

^^ 깨우친 자가 깨우친 자를 알아본다.

이러함은 없습니다.

 

육조 이후로는 선맥의 종지를 끊었기에

이러함은 말로 말장난하는 것입니다.

 

이때를 일러 알음 없이 아는 선지식들이

예전에 소식이 끊긴 자리를 말 한 것입니다.

 

‘도’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물길이 만 갈래 억만 갈래로 갈라져도 원천은 하나이듯

그 전하는 바는 하나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중생에게 ‘도’에 대한 깨우침은 없습니다.

 

다만 중생은 항상 살아서

다시 나서 거듭나는 삶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중생이라 이름하며

이것은 자연의 들풀이나 나무나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 나는 인격이 없어

모든 답글에 보면 처음은 그렇듯 점잖게 하다가

말꼬리는 본래 말투가 그럽니다.^^

 

석가모니도 성도를 하였을 때

뒤에 사신이 그를 보호하 듯

머리 위로 감싸고 있는 상이 인도에는 많이 있지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니

어찌 부처가 무엇인 줄을 알고

부처가 한 말을 이해하고 그 진의를 알겠는가?

 

공부도 하려면 제대로, ‘행’도 하려면 바르게

가르킴도 가르려면 자기가 알고 가르키는 것입니다.

 

다만 중생의 ‘습’이 이러하니

백날 만날을 깨우친다 해 봐야 헛것이며

만권의 경서를 보아야 그것이 그것일 뿐.

 

성불을 한 존재란?

이미 세상에 오기 전에 사리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을 불사리라 합니다.

 

그래서 이 나라 다른 비서에도 전하듯이

오는 자를 미륵이라 이름하던지 하나님이라 하든지

그가 그림자가 없다고 한 연유가

이러함을 말한 것입니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그 몸 자체가 ‘불’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광명이 나타낼 때는 당연히 태양이 빛을 잃고

삼천대천의 법계를 비춘다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함은 조절이 되니

그야 조절 하는 자의 마음이겠지요.

 

다만 이러한 자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미약하게라도 나타낼 때는

중생은 유정이나 무정이나 개도 알아봅니다. ^^

다만 자기 정신 자기 의지로 알아보는 것과

그 아닌 것이 있으니...

이 또한 중생은 이마저 깨우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작용하는 이것을 ‘신성’이라 합니다.

또는 ‘불성’이라 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