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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식이 찰나생 찰나멸 한다던데요....

2011.09.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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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식은 누진입니다.

 

쌓이고 쌓인 자기 생의 굴레이며

이것이 육도 윤회의 근본입니다.

 

아뢰야식은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고

쌓여진 자기 습 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이동하거나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숙명입니다.

 

불가의 자등명 법등명과 같은 맥락의 말로

자기 길은 자기가 밝히고 가는 것이며

 

법등명은 법(율계)에 의지하여

자기 수행의 길을 가라는 말입니다,

 

아뢰야식은 찰나에 생하고 찰나에 멸해지지 않으며

수행에 따라 나타나고 나타나지 않은 것뿐입니다.

 

자기 허물을 알고도 모르는 자가 있으며

허물이 허물인지 조차도 감지 못하면

이는 무처중생 입니다.

즉 윤회겁에서 갈 길이 각자 따로이 있다는 말입니다.

 

‘습’이란 자기도 모르는 관념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짐승의 것도 있으며 사람다운 사람의 행이 있으니

 

이를 가장 명명하게 닦아가는 것을 ‘수행’이라 합니다.

 

윤회란 것은 간단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자는 돼야지 원자나 개나 뱀 여타의 인간이나

다 같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어서 다음 생,

지옥은 그만두고라도 다시 태어나는 보장,

즉 인도환생은 어렵습니다.

 

만약 세세토록 인도환생 하였다면

이것이 바로 ‘라마’이며

이러한 현상계의 방편적 표본을

티벳의 포탈랍궁에서 전래 되던 라마 입니다.

 

그러나 이제 티벳에서도 이러한 과정을 금지하였으니

이는 이미 윤회겁이 끝났다는 것이며

 

삼도로 축소되는 세상이 시작되는 것을

암시 하는 것입니다.

 

아뢰야식은 갈고 닦아

마치 검은 돌을 갈아서 하얗게 만드는 것과 같으며

 

도가 현천상제(장자의 전신)께서

인간 백정으로 세상에 와서

스스로 깨닫고 그가 쓰던 백정의 철퇴를 갈아

침을 만들어 인간 혈을 정하고

인간의 병들고 고통의 삶에서 구하는

침구를 만든 것과 같습니다.

 

아뢰야식은 의식할 필요 없이

그저 자기 행에 의해서 멸해지고 닦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어느덧 큰 바위 얼굴이 되어있듯이

부처를 가슴에 안고 살면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입니다.

 

자기를 비운다하는 것

결국은 자기란 존재가 없으니

굳이 의식도 행도 제약이 없겠지요.

 

다만 이것이 진실 된 수행의 결과라면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이것을 말로는 하나 벗어나기 힘드니

고뇌와 번민이 일어

찰나에 팔만사천 모공이 들락 달락 하여

어느 놈이 자기 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법성이 공함은

누구나 법성에 의지하여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한 생각이 일어

파도가 치고 삶이 너울을 탑니다.

 

그래서 도를 깨달으려면

생각을 끊으라 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마저도 아뢰야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