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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연? / 2012-01-16 21:01

category 2012년/1월 2024. 2. 13. 18:38

반연?

2012-01-16 21:01

eowjdtks1

 

반연은 6식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모든 중생이 은혜를 입어 반연하나

다만 어리석어 이를 깨우치지 못함입니다.

 

도란?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아니함이니 곧 반연입니다.

 

그러나 6식은 항상 5식에 머물러지며

이를 초로인생 이라합니다.

 

진·가의 깨달음이 이러함 이니

이거이 부처와 중생의 또 다른 차이입니다

 

이거이 삼독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중생이기에 그리합니다.

 

넘치지 아니하고 모자르지 아니함이 곧 반연이며

0.0000000000000000000001%선상 일지라도

이것이 ‘식’과 ‘혜’가 다름입니다.

 

만약 님이 반연의 이치를 바로 안다면

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체가 고통일겁니다.

 

감정이 없으며 고뇌와 번민이 없으며

그대로 돌 같이 부동지(무정)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이라는 것은

반연의 단계를 넘어설 수 없으면 고통이고

넘어서면 환희입니다.

 

확실하여 명확하면 이 이치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 이치를 깨달으면 곧 부처이며

이 때는 이미 님이 누구인지 태시의 어떠한 존재였는지

그 후라면 무엇으로 시작된 존재인지를 알게 되겠지요.

 

그리고 살아온 길이 모든 부처에게 선근을 심었으며

그 걸어온 길이 가시밭 길 이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다시는 윤회하지 않으려하겠지요.

 

그러나 누구나 이러한 길을 보지 못하니

이거이 또한 부처와 중생의 차이겠지요.

 

7식은 후회의 여정이고

8식은 이것을 보니

가히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봄과 같습니다.

 

 

======댓글 첨부 ======

나는나다님 12.01.17

어느 분이 말하길.. 부처님도 완전하게 깨달지 못하여,

후에 완전한 깨달음을 위해 이 세상에 다시 온다 하셨는데...

님께서는 이 말을 어찌 생각하는지요?

 

 

eowjdtks1님

12.01.17

 

님은 님이 나는 나다라 했듯이

부처는 부처일 뿐이고 나 역시 나는 나일 뿐입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님은 그 길을 모르고

나는 그 길을 알고 있는 것뿐입니다.

 

님은 님의 길을 모르고

나는 보고자하면 님의 길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님이 질문한 부처는

깨달음의 길과 많은 선지식을 거친 부처이고

나는 반도막짜리입니다.

 

그러나 모든 부처도 반도막짜리를 거치지 아니 하면

다시 돌아가지 못합니다.

 

반도막은 보이는 것이 반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반이니

이승과 저승으로 방편하면 이승 저승 다 이며

그러나 이 세상에 보이는 것도 다 모르니

이를 중생들이라 합니다.

 

이승도 없거니와 하물며 삼승이라

다만 방편으로 설한바 라는 것이며

오직 일불승을 위하여 법화를 설하신 것입니다.

 

부처가 다시 오신 다는 것은

다시 오는 부처는 깨우치기 위함이 아니며

중생의 마지막 성숙을 위해 오는 것입니다.

 

즉 성불할 중생들을

성불로 인도하여 이루기 위해서 오는 분으로

이거이 인연복 이라합니다.

 

그래서 옷·밥 나오는 것 아닌데

하물며 정서하여 책이라도 쓰면 될 터인데

부질없기에 이렇게라도 꿈 깨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곳 뿐 아니라

트윗이나 여러 곳에 얼굴 없는 글을 남기는 것은

법계가 그나마 이 말을 이행하여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곳이나 누구 하나를 위해

글을 쓰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미친 짓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로 꿈을 깨고 찾아드는 이들로

연자를 구별할 뿐입니다.

 

내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없는...

 

부처가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는

애당초 부처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중생이 이 세상 이외에 다른 세상을 모르기에

찾다가 그리 말할 뿐이겠지요.

 

이러한 중생은 부처도 이 세상에 다시오면

다시 깨우쳐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을 혜암 선지식이

보림이란 없다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한번 깨우친 것을

다시 공부하는 것은 없는 것이란 뜻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위해서 오는게 아니라

윤회겁과 함께 육신만 바꾸고 도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생에 대한 연민이며

모두를 성숙케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모두란 그 시간까지를 말합니다.

 

불가 법화는 3000년을 주기로 합니다.

 

이것을 백천만겁 난조우라 하며

 

겁수는 이 세상 시간이 아니라

다른 공간의 시간을 말하며

이 세상에서

다른 공간의 흐름을 보게 되면 겁에 든다 합니다.

 

다만 과거부처도...

중생의 앞일 전일 들을 왜? 모르겠습니까?

보면 슬프고...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여 가는 그 길이 중요하기에

간 길을 말한 것뿐입니다.

 

또한 앞 일을 알아서 살아가는 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는 지났으니 없고

현재는 지나니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없다한 것이며

이는 공간의 주ㅐ를 하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것은 지나는 상에 불과합니다.

 

이 말은 중생이 이 세상에 와서

운명에 메인 것이 아니라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으로

항상 현재 명사이기 때문이며

이것을 깨달으면...

중생의 허물이나 죄얼이란?

아~ 하는 그 순간.

개인이 짓는 과보로서 설명한 것입니다.

부처가 점쟁이는 아니잖아요.

 

부처는 항상 이 세상에 있습니다.

다만 지켜볼 뿐이며

성숙한 중생을 수행의 길에서

그들이 만든 운명대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윤회라 하며

법륜좌를 지키고 앉아 그 시간까지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존재하는 부처도

이 세상에 와서 돌아갈 시간이 되면 돌아가는데

반야로서 돌아가기에

반야를...

시대명주 시대신주

고 의지반야 바라밀다라 합니다.

 

일반적 중생의 죽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번 생 그는 말없이 떠날 것입니다.

중생에게 닥치는 것을 보아야하기 때문에

이를 아마 눈을 감고 보지 않을 겁니다.

아니면 더 지켜야 하겠지요.

그러나 워낙 고통을 당했기에 그러지 아니할 것입니다.

 

부처도 이 세상에서

깨우친 선지식들이 많이 찾아

중생을 연민하여 하소연하나

만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마음을 알 것 같더군요.

 

나 역시 그 뜻을 알기에

아니 되는 줄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한 마디씩

진실을 밝혀 줄 뿐입니다.

 

역대로 부처는 석가모니 이후에 나타난 바가 없으나

이 나라에는 항상 있었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부처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부처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부처이지 못하니 부처가 아닙니다.

이 이치를 깨닫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머라 가르키던

여타의 종교나 경전에서 무어라 가르키던

가는 길 모르니 부처가 아닙니다.

 

그러니 법화에도 이 세상 모든 부처가 오시는 까닭은

일대사 인연에 의함이라 합니다.

 

일대사 선연은 서산너머 붉은 노을 휴정입니다.

항상 하는 반야는 대법륜좌의 연민 유정한 유정 입니다.

 

이러함이 방편이며

여래의 방편은 허물이 없다 함은

이러함이 항상 하여 옴을 가르킨 말입니다.

중생이 길을 가는 것은

자기 안의 ‘진아’를 찾기 위해 비우고 덜어내고

찾아 이르는 것입니다.

 

부처가 열반에 들었던 것은 ㅠㅜ

중생은 가르켜 줘도 알 수 없으며

이것은 진짜로 수행하여 성숙의 길을 걸은 자 들은

가르켜 주지 않아도 그냥 알게 되어있는데

알게 되어도 이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방편으로 화두를 사용하여

연자를 깨우치게 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화두는 이러한 이들이

천기를 거스르지 않고 사용하는 은어입니다.

 

그러니 일반 중생은 진실로 자기에게 물어보면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 게 정상입니다.

 

 

a*h*s*n*님 12.01.16

귀하의 글이 좋기는 한것 같지만 좀 해괴한 언설인 것 같아서 좀 그러합니다. 어찌보면 횡설수선 ?

 

 

eowjdtks1님

12.01.17

 

문맥의 앞뒤가 맞는 것은 좋게 보입니다.

 

다만 고와 집을 멸도하지 않으면

자기 집을 자기가 지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스스로 집을 지었다 합니다.

 

스스로 공상이라 하여 공이라 해도

상이 없다하나 이것이 그대들의 아상이며

아집으로 집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다 하는 것이며

이 길은 가르켜 줘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횡설수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님의 배움이 짧다는 것입니다.

유치원생이 대학원 교재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러나 이 글이 좋기는 한 것 같은데?

과거 생에 심어지 선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