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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유마와 수자타의 대화(2);창조주란? -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1

2008.10.19. 10:12

 

 

신(神)의 존재란 어떤 것인가?

 

오늘날 여러 종교에서

신에 대한 가르침을 말하고

신에 대한 예견된 성스러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신앙(信仰)인들 이라고 합니다.

우리 종교인들은 모두가 신앙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에 대한 개념이 종교성에 부합되어

그 진실 된 모습이 변형 외곡 되어

오늘날까지 인간들의 심성에

잘못된 견해를 뿌리깊이 파고들어

진실의 눈을 가리고 있으니 안타갑기 짝이 없어

예전 나의 신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으로 혼란스러웠던 점을 생각하여

바른 수행인, 신앙인들에게

전하여 드리고파 적어 봅니다.

 

하느님, 부처님(여래)는

늘 변함없는 법신으로 존재 합니다.

 

법신의 몸체는 이 무량광대한 우주요.

마음은 진리인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 여래를 볼 적에 모습(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달리 음성(입)으로 나를 구하는 자는

능히 진실로 여래를 못 보는 이라고 했고

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라고 했습니다.

; 무릇 모든 상 있는 것들은 반드시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볼 적에

곧 여래(진실)를 보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여래는 외적인 모양의 형상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쯤은 불교인들 이라면

이미 수없이 들어왔고 알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문제는 타종교 특히 기독교인 들입니다.

 

그럼 기독교 성경의 입장에서 짚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말하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하느님 한데로 갈 자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가르켜 아버지라 했습니다.

(불교인은 弗子니까 부처님이 아버지겠죠^)

 

즉, 예수 = 진리이며

예수가 하느님(여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곧 진리의 아버지라는 뜻이며

 

예수님이 진정 말한 의도는

진리를 통하지 않고는

더 큰 진리 참 진리에 이르지 못함을 역설한

대승적인 차원의 말씀인 것인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해석을 보면 ㅠ~

 

기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십계명 중 첫 번째.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도

동일한 해석입니다.

 

나는 = 하느님, 신은 = 하느님, 하느님은 = 진리이므로

연결시켜 말하면

 

진리 이외에 다른 신(비 진리)을 받들지 말라는

이 또한 대승적인 뜻이 담긴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神이란 개념은

유형의 모습을 갖춘 존재가 아니라

말씀인 眞理가 神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神은 어떤 특정한 모습을 띄며

비밀스러운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은 말과 언어 이전의 모습이며

또한 어떤 용어로도 표현 할 수도

표출되어 나올 수도 없는 것이다.

 

바로 神(신)은 眞理(진리)이기에

바른 참 이치가 신의 몸이며

거주하는 곳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른 이치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천지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기에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며

지구촌 반대편의 어떤 곳에서도

지금 거기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존재는

무명의 바보스러운 무지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며

神의 존재 모습을 봤다고 하는 사람들과 기이한 체험은

그의 종교적 믿음에서 나온

상념의 결과로 인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 사람의 神(진리)에 대한 믿음이

그 종교 교리의 모습으로

또는 평소 잠재의식에서 비춰 나타난 것이며

 

그의 믿음 정도의 순수성의 색깔에 따라서

진리의 응집체는 상응하여 변화된 모습으로

계시나 예시 또는 기이한 현상 등을 주는 것을 가지고

그 종교의 절대성의 힘에서 나온 것으로

우매한 형제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神은 참 이치가

신의 몸이자 동시 안주하는 곳으로 삼고 있으며

종교인이든 비종교 인이든 상관없이

그의 믿음에서 동반된 상념이나

평소 잠재되어 있던 의식 세계에서

모습을 다퉈 나오는 것이지

특정 모습을 가지고

특정 장소에만 있는 것은 사실 아니다.

 

다만 진리의 응집체(참 이치의 정기 or 우주의 정기)가

중생 제도를 위해 방편으로 특정한 모습으로

특별한 장소(극락세계)를 구사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목적이 달성되면

언젠가는 사라 질 수 있는 것이다.

 

神(진리)의 정기(바른 이치)는

그때그때 그 사람의 사고의 순수성 인식정도에 따라

천변만화의 모습을 구사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같은 대상 앞에서 기도나 명상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평소 의식의 머문 상태에 따라서

진리의 응집체는 달리 예시나 계시를 주는 것이다.

 

예로, 같은 산에서 기도나 명상하는

무속인과 수도인이 있다고 볼 때

같은 대상 이지만 진리의 응집체는

산신의 모습으로 또는 거룩한 존재의 느낌으로

달리 우려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내가 중심이며

나의 마음 의식 상태가 바탕이 된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불교와 기독교 민간 신앙에서 등장하는

神의 存在(존재)는 어떤 것인가?

 

간단히 보면...

 

먼저 불교에는 신을 인정치 않는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

여래께서는 경전의 말씀은

중생이 작은 법을 즐겨

덕이 엷고 업장이 무거운 관계로다

중생을 제도시켜 해탈케 하기 위해서

이름이 같지 않으며

연대(지나온 시대)가 크고 작아 같지 않음을 말하고

여러 가지 인연과 비유와 이야기로

가지가지의 법을 설하여

중생을 교화할 목적으로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을 말했지만

사실은 일승(한분의 부처님)을 말하기 위함이요

결국 일승만 존재 한다고 하셨다.

 

이는 곧 모든 여러 황하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들은

하나의 부처님을 다양한 모습으로

일승의 부처님을 말하기 위해서 등장시킨

화신의 분신 체 들이다.

 

비록 화신체 이지만 眞身과 둘이 아니며

구별은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능령(能靈)은 진신이 있는 가운데

화신의 몸을 수천 만억의 몸으로도 나타 낼 수 있다.

 

이러한 몸으로 이 우주의 모든 중생들에게

그들에 맞는 모습으로 분화되어 응하여 제도 하시는데

진신과 화신의 가치는 동일하여

한 몸인 동시에 한마음인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눈

이슬비 안개 우박 등이 꽃밭에 떨어지는가 하면

어느 지붕 위에... 지나가는 우산 위에...

냇물 위에...운동장 위에...등등 각각 떨어지지만

결국 동일한 물 H2O가

다양하게 변제한 모습과 같은 것이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모습의 변재한 물들은

다시 천골짜기 만골짜기 물들에 흡수 되어

결국 원래자리 대해의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大海에 입한 물들이

어느 물이 비고 눈이며 우박이고

이슬비 안개 인가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여러 수 없는 부처님들이

대해의 한 분 부처님으로 歸佛(귀불)되는 것이며

다시 만 가지 모습의 화신으로 變證(변증)되어

중생을 제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바라본 眞神(진리)의 모습이다.

 

기독교의 신(하느님)은 唯一神(유일신)으로

불교의 일승(一佛)과 시실은 같은 것이다.

 

앞서 말했듯 神은 眞理(진리)라고 했으며

唯一神(유일신)은 오직 하나의 참 眞理(진리)만이

存在(존재)한다고 말한 것을

기독교인들의 외곡 또는 잘못된 선견의

무지에서 나온 해석의 오류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에 천사는 천천만만이요.

마귀는 이만만 아라고 했는데

이 말은 선이 악을 결국 굴복 시키고 만다는

진리 체의 의지의 말씀이라고 보면 됩니다.

 

무속 인들의 신은 어떤 존재인가?

 

한마디로 무속 인들이 모신 神들은 神이 아니다.

 

그들의 신은 사람이 죽어서 된 영 들이다.

 

사람이 죽으면 업에 따라서 금방 윤회되어

다른 몸을 받아 가는가 하면

 

어떤 영들은 윤회의 때를 기다리는 중에

孤魂(고혼)이 되어 떠돌다가

자기와 가장 파장이 맞는 후손을 통하여 또는 택하여

자기의 살아생전 가슴에 맺힌 일들을

풀고 싶어 하거나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자 한다.

 

그 영이 살아생전 의식사고의 정도에 따라서

죽어서의 행위도 비례하여 움트는데

윤회에 시간이 있음을 아는 영들은

좀 더 공덕을 쌓아서 나은 세계(천상)에 오르기 위해서

영으로 무능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5~10년 정도 공부를 한다.

 

여기서 공부란 길흉화복을 점치거나

소위 약명도사가 되어 병의 치유 능력을 구비하여 오는데

가장 파장이 맞는 후손을 택하여 찾아든다.

 

그 영의 공부정도와 살아생전 思考(사고)

영매인과의 심성이 조화롭게 되면

소위 유명세을 타며

그렇지 못하면 신당만 모셔놓고 신을 못 부리고

때론 그 영이 거짓말을 하고 탐닉하는 그 어떤 행동도

영매의 몸주를 통하여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의 몸주 영매가 되는 것도

사실은 그 몸주가 그 영의 진동수와 동일하기 때문인데

즉 의식의 레벨이 같기 때문에 찾아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고의 의식정도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 ‘나’가 진실로 중요한 것이므로

평소 경전공부와 참선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일상생활의 사고의식의 진동수가

사후의 의식 세계의 진동수로 이끌려 가기에

우리의 공부가 제삼 거론 할 것 없이

심각하게 중요한 것이다.

 

* 神(眞理)는 참 理致(이치)

神의 몸이자 동시 안주하는 곳으로 삼고 있으며

그곳 장소와 그 대상에 견주어

이치에 맞는 모습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 댓글 첨부 ======

나요

10.12.08. 18:46

 

지금 것 가진 사고 중에

가장 잘 알고 명확한 설명 입니다. ^^

부처라 이름하신분의

허공도에 대해서 아시면 설명을 부탁합니다.

 

 

나요 10.12.09. 18:53

밀월 ^^ ㅠ

신의개념.

영이란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것.

그러나 있기에 존재하고 존재하나 알 수 없는 것.

즉 중생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여래 신장.

여래는 천지 처에 있고

이것이 보이면 ‘색’이고 보이지 않으면 ‘공’이라.

 

색에 의해 구분이 되고

살고 죽어 시간이 흐르고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중생이 병들어 여래가 병든 바 되어

여래는 이것을 끊었다.

 

위의 금강경은 여래설에 대한 의세설을 설명한 거이며

이거를 허공도라 합니다.

 

말하기는 귀찮고 아는 자는 알고 모르는 자는 모르고,

알고도 모르니 無記에 있고

실상은 나타내면 적멸이니

이거를 남긴 것이 실상묘법연화입니다.

 

이를 알아서 석가는 서천을 속이고

달마는 동토를 기만했다 했으나

이것은 기실 중생이 난무 난잡해진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고

도를 오도한다 하는 것입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yumawasuzata/21pG/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