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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어디에나 있습니까? / 2010.11.04 16:41

category 2010년/11월 2024. 2. 11. 09:23

진리는 어디에나 있습니까?

2010.11.0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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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요.

 

그러나 진리란?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잘못 가르키니 그러지

진리라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만나고

어느 곳에서나 듣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님 말대로 가르킨 자들을 개똥철학이라 합니다.

 

그러니 화장실 변기가 아니라

그들은 개 똥에서도 진리가 있다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삼독에 매여 있는 자들’ 이라 합니다.

 

진리를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예수님은 내가길이요 진리며 생명이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거북이가 바다속에서 삼천년을 있다가

바다 위로 숨을 쉬려 올라올 때

(이것을 ‘구명’이라 전했습니다)

하늘에서 바늘 하나가 떨어져

거북이 등에 안착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2000년이 지났고

본디 이 말씀을 설한 부처님의 이 말씀은

60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말합니다.

 

이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며 혹자들입니다.

 

저희가 예수님을 대신하고

부처님을 대신하는 이들입니다.

 

세상을 사는 것은 이치입니다.

 

세상 속에서 그것을 구할 수 있다고 한 분은

위의 두 분 이외에는

단 한 분도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전의 해석이나 예언서등의 해석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전하는 입장에서도

자기의 관념이나 개념으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행업에 인한 죄의 댓가를

스스로 삶의 여정에서 깨달아가며

하나씩 하나씩 갈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지견해탈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견’이란 ‘배움’입니다.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경험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 때 전하는 경전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습’으로 나타납니다.

 

자기의 습은

자기가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습성’이라 합니다.

 

‘진리’란 본래 ‘공성’을 말합니다.

 

공성은 본디 그 성품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만

정작 성품이 없는데 왜? 성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

색이 공이며 공이 색이라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스스로 습을 보지 못하면 절대

진리의 ㅈ자 하나의 뜻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라는 망상.

즉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생각을 끊으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일어나는 생각을

끊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끊어진 그 자리에서

찰나에 지견해탈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수겁 생의 생각이

찰나를 스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중생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저 먹고 자고 똥을 만들고

결국 무어라 해도 죽어야 하고

그래서 중생에게는 진리란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이르도록 경험 속에서

스스로 알아지는 찰나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공부하여 확연해지는 것.

이것이 진리로 가까이 가는 길입니다.

 

스스로 알아 지견이 해탈하면

그때는 알고도 모르고 모르고도 아는 고로

이것을 無記(무기)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쉽게 가르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은 이 마저도 이해가 어려운 것은

이미 그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안다함은 알아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안다하는 집을 지어버렸기 때문이며

부처님은 이것을 경계하여

이러한 사람은 가르킬 수 없다 하셨습니다.

 

진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러한 자는 입을 다물게 되어 있습니다.

 

‘활연’하여 ‘통’하기 전에는

두려움과 공포로 전율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확연하여 질수록

안개 무안개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비로소 꿈을 깨라는 말이

무슨 말인 줄 알 수 있을 겁니다.

 

세상사는 이치를 가지고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말할 것 같았으면

예수가 12명의 거지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부처님 역시 10명의 거지들을 데리고

49년이나 걸식하면서

그 따위(개들) 중생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서 니들 니들이야.

니가야~ 멍하고 청하고 무명에 쌓여

거지를 거지라 하니 다르게 말하면 ‘각설’이고

각설은 이미 꿈 깨선 아는 자를 말함이고

거지는 크게 지혜를 이룬 자를 말함이라 하면

개들은 댓글 따위나 조동이를 나불나불 나불도를

그래도 도라 하지 않을 거라 봅니다.^^

 

진리는 머문바 없다 하나 머물기에 진리라 하고

그것이 공성이라 하나 있기에 공성이라 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진리를 찾는다 하여

세월이 흐른 뒤에 졸라 찾는 넘들이나 ^^

 

부처님 입멸 후에

부처의 도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넘들이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살아 있는 것을

유화적으로 풍자한 옛 성현들의 지혜를

그랴 그러니 그라고 사는 것이지 안겠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