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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에 대해 / 2011.01.18 17:00

category 2011년/1월 2024. 2. 10. 09:33

부처님에 대해

2011.01.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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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나?

 

당연히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답니다.

 

그러나 깨달음이란

무엇을 깨닫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여기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지견해탈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일체의 지혜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이것을 다른 말로 ‘반야지혜’라 합니다.

 

반야지혜를 다른 말로

깨달음의 궁극적인 처음이자 마지막 과정이기에

‘해인’이라 하기도 합니다.

 

해인이란 말은 지견해탈과 같은 말 입니다.

 

여기서 ‘해’란 문자는

두 가지 다 바다 海가 아니고 풀 解자입니다.

 

이거이 절집에 전해진 그림 경전

십우도에 나오는 것을 간단히 말하면

지견해탈의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여성으로 부처가 된 분이 있나?

 

부처란? 본래가 ‘여성’입니다.

 

이미 ‘용녀’란 여인이

불세존으로부터 인가를 받아

부처가 될 것이라는 것이 경전에 나올 겁니다.

 

관세음보살이 부처인가? 아닌가?

 

관세음보살은 부처가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은 본래로부터 ‘불’입니다.

 

관세음이란?

세상을 ‘관’하고(보고) (음)듣는다는 말 입니다.

 

관세음은 본래가

이 나라에서 전해지는 ‘천대장군’입니다.

 

굳이 음양으로 따지면 ‘양’에 속합니다.

 

지장이란 본래가

이 나라에서 전해지는 ‘지대장군’입니다.

 

굳이 음양으로 따지면 ‘음’에 속합니다.

 

이 두 분의 신성이

하나로 용사되는 것을 불세존이라 합니다.

 

부처님이란 어원을 잘아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란 ‘여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래로 깨달은 자를 부처님이라 하나

부처란 어원은 중국에서 전해진 말로

‘천자의 어머니’를

사적인 자리에서 부르는 존칭을 부처님이라 합니다.

 

즉 부처님이란?

‘하늘의 부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자’란 ‘하늘의 아들’을 천자라 합니다.

 

이 나라 전해지는

설화 또는 전설이라는 건국 초기를 보면은

신시에 내려올 때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불가의 경전은 종교가 아닙니다.

 

불가의 경전은 ‘역사서’입니다.

 

인류가 태초부터 존재하게 된 것과

인류가 살아오는 과정을 기록한 역사서 이며

그 중심을 규명해 놓은 것 입니다.

 

물론 모든 종교의 근원은

종의 근본을 가르키는 것이지만

불가의 경전 같이 적나라하게 기록한 경전은 없습니다.

 

본디 모든 종교의 근원은

삼니로 부터 전해진 것입니다.

 

이들 삼니를

靑尼(노자)

中尼(공자)

牟尼(석가) 라 합니다.

 

여기서 ‘니’자는

중 尼 여승 尼, 진흙 泥 두 종류 한자 밖에 없답니다.

 

천부인이라 하든 ^^

아니면 흙으로 빚었다하든

이들이 인류의 조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같은 종교 내에서도 의론이 분분한데 굳이

진화론이 있고 창조론이 있답니다.

 

이거이 인간이 짧은 지식 또는 알음알이로

스스로 답도 없는 것을 규명 짓고자 하는 것 입니다.

 

이거이 현대판 종교이며 학설입니다.

 

그러나 진화론도 맞는 말이고 다만 다르다면

인간의 종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말은 ^^

이러한 것이 함정입니다.

 

진화론은 불가의 경전에 아주 잘 나와 있답니다.

 

인간을 진화하게 한 곳은

불가 경전에 나오는 ‘기사굴산’입니다.

 

그리고 불가의 경전은 그 근원이

인도가 아니라 바로 이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 기사굴산이 있겠지요.

 

당연히 ‘수미산’이라는 ‘오행산’ 역시

이 나라에 있겠지요.

 

그래서 수미산 둘레를 삼백이십(320)리라 한 거랍니다.

 

창조론 ^^은 여느 종교의 창조론 같이

흙으로 빚어서 만들었다하면 이 역시 맞는 말 입니다.

 

위에 진흙 니를 쓰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웃기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창조론 역시

그들 스스로 쓰면서 아이러니함을 모르니

이 역시 어리석은 무명의 중생이라

그리하는 것이랍니다.

 

성서의 창조론은 로고스,

즉 말씀이 계셔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담과 하와는

흙으로 빚어서 만들었다하지요 ^^

 

불가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사대’라 합니다.

즉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지 ; 흙으로 빚었으니 흙으로 돌아가며

 

수 ; 흙을 빚으려면 물로서 반죽했을 테니

이 역시 물로서 돌아가며

 

화 ; 흙을 빚어서 제품을 만들려면

불로서 구워야하며

 

풍 ; 빚어진 제품에 콧김 한방이면

이거이 생령이 된 지라... ^^

 

결국 사대는 바람 따라 흩어지니

죽으면 그리 돌아간다 해서

사대로부터 오고 사대로 부터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말 되지요?^^

 

신성은 스스로 분수를 알고 스스로 멈출 줄 알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베풀고 같이 할 때

이것을 불가에서 동업중생.

즉 함께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음 역시 무엇을 깨닫느냐가 중요할 것이며

종교 역시 각자의 근기에 따라

중생이 귀의 하는 것이지만

 

가르키는 것을 오도하고 잘못 가르키면은

주인이 여럿이 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바 ^^

이넘 말도 옳고 저넘 말도 옳다 해야 하는데

 

퇴계는 휴정이니 그리하고

유정은 연민하나

긴 것은 기고 아닌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불가에서 불세존이라 하는 명칭은

불이 세상에 존재 하신다는 말이며

무식하다 못해 무지한 종자들은

자기들이 사탄이며 마구니인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불’은 부처 佛

‘세’는 세상 世 또는 대 世

‘존’은 높을 尊

 

그래서 佛世尊 이라 합니다.

 

다만 시간이 이를 동안만

그저 하는 짓거리들 계속하라고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결국 불가는 인간은 갈 수 없는 길이며

다만 부처님을 알아

자성에서 그 씨앗을 구하라 한 거입니다.

 

자성에서 그 씨앗을 구함은 이거를 자등명 법등명.

즉 자기 길은 자기가 밝히고 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과정은 인간이 어떻게 분화되고 태어나며

어느 곳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가를 알면 알 수 있으나

이를 아는 자가 없기에 깨우치라 하는 것이며

이러한 깨우침을 아라한.

즉 ‘부처’라 하는 것입니다.

 

아라한 이란? ‘옹박’이라고도 하며

옴 다롱 박이라 합니다.

 

본래 아미타경전에는 이를

여래 밀인을 안장하고 있다하여

여래 밀인은 옴다롱박이라 합니다.

 

같은 경전을 보아도 이해가 다르고 견해를 내는 것은

이것을 행업이라 하며

지견해탈을 한 자와 하지 못한 자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늘이 살겁을 내려도 그 마땅한 연유가 있으니

연유가 있다함은

그 증거나 근거를 세상에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도록

방편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단순한 믿음은

불가에서는 교설하여 지심귀명례 하라는 것이며

이거를 ‘삼보귀의’라 합니다.

 

다만 지심귀명례의 칭호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라 합니다.

 

지장보살이라 하며 이를 불·법·승 이라합니다.

 

^^ 기독교에서 지들도 모르고 말하는

할렐루야 하는 ‘할마위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불가의 경전을

중생이 아무리

몇 겁생을 깨우친다 해도 다 알 수 없기에

자성을 구하라 한 거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 ‘견성성불’이라 한 거입니다.

 

그래서 불가의 경전 중

8만 경전을 ‘정법경’이라 하며

정리되어 있는 경전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거를 옆으로 눕히면

∞이를 ‘무량경’이라 합니다.^^

 

통칭하여 8만 4천 경문이라 하는데

 

4천 경문은 아미타경이며

본래 이경전은 弗說입니다.

 

즉 말하지 말라는 경전입니다.

 

다만 지나온 세월에 무식하고 어리석은 이들이

이 경전을 佛設로 만든 것이지요.

 

이거이 뜻을 알 수 없기에

욕심에 자기들 알음알이를 내세우느라

결국 도를 오도하는 것입니다.

 

^^아미타경은 죽음의 경문으로

성서의 계시록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은 인간이 편을 가르고

자기 것이 옳다고 하여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음은 단순한 것이며

순수하여 그 길을 따르는 것 일뿐.

복을 빌거나 자기를 위하는 것은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일일 뿐이라는 말이지요.

 

중생들 중 중근기에 든 이들은

그들이 세상에서 겪은 고통 속에서

피어오르는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를 때

그 주인은 그 꽃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연꽃이 궁창에서 피어오르나

궁창의 물이 연꽃에 물들지 아니함은

이러한 생을 살면

이거이 곧 부처의 성품을 간직한 거입니다.

 

아마도 힘들겠지요?

그러면 그런 이들은

백천만겁의 시간이 허락되어도 부처가 되기 힘듭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 있었다는 것

 

다만 그러한 기회가 닿을 인연복을 짓지 않았다는 것은

현생의 삶 이전 과거생의 삶이

그러한 인연복을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올 때는

이미 전생에 대한 허물의 죄 값은 다 치르고 옵니다.

 

그러기에 태어난 생은 누구나 여래성 이라 하여

그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업이 두터울수록

영체가 복합되어서 오는 것을 모르기에

1 ~ 4분리.

즉 오화 공도의 이치를 더욱 알 수 없게 되어있으며

이러한 이치는 천부경에 잘 나와 있답니다.

 

중생이 생각을 하나,

이 넘의 생각이 자기 아니게 작용하는 것.

이것이 복합영체의 작용이며

 

이를 일러 선지식들은

자기를 덜어내라 닦아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덜어내고 닦다보면 구하는 것.

즉 자기의 성품을 찾게 된다는 것인데

이거이 본래의 ‘여래성’ 입니다.

 

그래서 여래성은 마치 아이와 같다하며

이를 ‘백’이라 합니다.

 

그래서 부처란 마치 백치와 같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즉 정변지(바른 지혜)를 갖추고 백치와 같아야 한다니

어렵고도 어렵겠네요.

 

이러한 ‘백’이 과거칠불의 ‘성품’

그래서 인간은

삼혼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거입니다.

 

다만 위에 설명한 대로

성주괴공의 이치대로 사대로부터 오고 간다면

그저 ‘공’한 바니

굳이 깨달을 바도 알려 할 필요도 없답니다.

 

그냥들 편하게 내키는 대로 살아가야지요.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