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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복 과 인연 / 2008.03.15 22:52

category 2008년/3월 2024. 2. 4. 11:14

인연 복 과 인연

2008.03.15 22:52

 

 

zkdhtmeowp

 

우리는 상식적 어휘도 백과사전에 그 뜻이,

제대로 기록 되지 않고,

또한 잘못되어진 것들이 많다.

즉; 누가 사전을 집필했던,

사전에서 의미하는 단어나 어휘가,

잘못 기록되어진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보면,

잘못 이해된 알음은,

학인 들이나 그것을 말하는 자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거나,

아니면 아예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되므로,

신중해야한다.

 

흔히들 불교에 몸담은 자들이나,

불교를 공부하는 학인이나,

또는 불자라는 분들의 인식이...

 

인연복 이란 것과 인연의 의미를 잘못알고 있어,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해서 몇 자 적어본다.

 

우선 인연에 대해서 알아보면...

 

인연이란?

흔히들 말하는 인간과 인간의

단순한 만남의 과정을 인연이라 하지 않는다.

 

인이란? 잘 알다시피 인할 因(인)을 말하며,

연은 인연 緣(연)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인은 주체 이며, 연은 객체 이다.

 

여기서 실제로 ‘인’이 의미하는 뜻은,

그로부터 시작된 원인적 규명을 말한 뜻이다.

 

‘연’은 ‘인’으로부터

규명되는 객관적 의미를 말한다.

 

우리가 말할 때...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이러한 옷깃의 인연의 의미는,

부부지연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의 인연의 의미는,

인식의 가치가 전혀 다르다.

 

여기서 인은 주체라 했듯,

주체는 불존을 말하는 것이다.

연은 부처를 말하는 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부처란?

흔히들 인식하는 중생이 부처라 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인연의 의미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라면은,

굳이 인연의 복을 법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화경에 복중의 제일 복은, 인연 복이라 했는데,

이것을 중생과 중생의 만남을 말했을까?

 

그리고 이러한 인연의 만남을,

삼천년 만에 한 번 있을 것이라 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아무나

조건 없이 해당되는 게 아니고,

바다 속의 거북이가 삼천년 만에,

한번 바다위로 올라 올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바늘 하나가,

거북이 등에 꽂히는 걸 말했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어려운 만남이라는 것이,

인연 복이라 했는데,

인간들은 스스로 말을 만들어 왜곡하는 것이다.

 

불가의 경전에 이 말과 같은 말이 있으니,

개경계의 백천만겁 난조우 라는 말이다.

 

인간이 생을 살면서 윤회를 해도,

만나기가 백천만겁을 지나도,

만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것이 인연 복이다.

 

그러나 또한 이렇게 어려운 만남에서,

만나는 복이 있어도...

원해여래 진실의 라

 

원해 여래는 오직 진실해야,

그 모습을 보이며,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는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이런 말을 알려 주는 것은,

길을 가고자 하거나,

부처를 이루고자 한다면,

경전에 전하는 글 들을,

자의 적으로 오도

(그릇 되이 전하거나, 인식하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처가 되는 것은...

인간들이 실상을 알지도 못하고서 말하는,

무상이나 무념처 따위의 허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오묘한 마음의 이치가 있으니,

그것의 실상을 깨달아 알면 그것이 곧 부처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야의 이치로...

앞에서도 말했듯이 제대로 알고,

제대로 닦아지지 않은 중생에게는,

공염불 일 뿐이다.

 

언제까지 말도 안 되는

깨우침의 진리라는 것을 찾으며,

알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

하는 논리를 가지고,

답 없는 해결점을 찾으려 하는지 들???

 

인연의 의미가 중생과 중생의 만남이라면,

이 세상은 그 누구도 길을 알거나,

그 길의 진실 된 이치를 모를 것이다.

 

상대를 부처와 같이 보니, 그 마음이 부처라.

(부처의 마음엔 부처가 보인다.)

 

그렇다면 그 상대는, 누가 되든 부처와 같이 보며,

또한 상대가 부처라면...

왜? 성불의 이치나,

의미하나를 모르는 것일까??

 

이것은 마치 개새끼를 가지고,

사람이라고 자기 최면 속에서,

개도 사람 같이 하는 것 아닌가?

 

그런다고 그 개가 사람이 되는 가??

 

개는 개일 뿐...

중생은 중생일 뿐.

 

이것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란

화두의 함축된 의미이다.

 

그러나 중생도 부처가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불존이 가르킨 길이다.

 

이것은 명행족에 있으며, 이것이 모자른다면,

자타일시 성불의 길에서...

나와 타인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며,

진실된 마음으로 원하는 것이다.

 

즉; 소승과 대승을 말하나,

실상은 소승도 대승도 없다.

대승을 견지함은 보살의 길이나,

내가 모르는데,

누구를 가르키고 제도 한다는 말인가?

 

소승의 길을 가도...

그가 당연히 깨우쳐 실상을 알았다면,

그는 대승의 길(보리살타)을 간다 해야

맞는 말아닌가?

 

자기 오지랖도 못 가리는데,

소승과 대승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예를 들면 힘이 없는 자가 죽어라 얻어터지고,

가해를 한 자에게 내가 너를 용서한다.

이거 말이 되는가?

 

힘 있는넘 왈!

니까짓 것보고 용서해 달라 한 적 없어 ^^

용서 받을 일도 없고.

 

그러나 힘이 있는 자가...

힘없는 넘이 귀퉁뱅이 몇 대 올려 대니,

씨익 웃으며...

내가 너를 용서하고 귀엽게 봐주마.

 

아니면 내가 너에게 위해를 하지 않았는데...

왜 나에게 패악 하는가?

내가 길을 가기 위해서든,

그대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함이든,

참는다는 것은... 보리살타의 길이다.

 

예전에 부처님이 가리왕에게 찢기우는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비심으로,

그에게 깨우침을 주려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 와 어 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아하! 그렇 군요. 와

(이것은 몰랐기 때문에,

이해를 하는 과정에 있어 학인이다.)

 

어! 이새끼봐라, 제법이네?

이것은 개자식이니...

아예 불성이 없다.^^

이것은 백날을 해봐야 제법무아 제법공상.

 

덕을 베풀려면 힘을 가져라.

 

힘을 가진 자가 베푸는 덕은,

더욱 크게 베풀 수 있으나,

 

잘못된 길을 가면,

힘이 있는 만큼의 치루는 댓가가 더욱 크다.

 

능력자가 되고자 하면, 공을 쌓아라.

 

공이 무언인지를 모르면, 덕을 베풀면 되고.

만 가지 덕을 베푸는 것은,

한 공을 이루는 것이니.

이것은 생명의 보장이다.

 

이렇듯 흔하디흔한 인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