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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의 실체와 전해진 뜻. / 2008.03.09 19:05

category 2008년/3월 2024. 2. 4. 11:05

반야심경 의 실체와 전해진 뜻.

2008.03.09 19:05

 

 

zkdhtmeowp

 

반야심경은 600권으로 전해지나,

그 중 삼장 역, 구마라십 역,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중 전해진 내용의 뜻을 해석함에 따라,

진위 여부를 말하기도 하나,

모든 경전 중 불가의 경전은, 성서의 계시록 같이,

인간이 해석 할 수 없게 밀전 된 것이다.

 

즉 백번을 읽고 되뇌어도,

감추어진 뜻을 알 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을 마치 자랑인 양 해석 하여

책을 쓰고 토론을 하는데,

불가의 경전은 실상을 깨우쳐 아는 인간 들은,

깨우쳐 아는 대로 마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깨우친다면,

그는 분명 세상을 좋게 만들어 바꾸든지,

아니면 지옥도로 변하는,

아비규환의 심판의 주역이 될 것이다.

 

불가의 경전 중, 가장 기본적으로

깨우쳐 알고 가야 하는 게 반야심경이며,

이것을 알지 못하면, 나머지 불가의 경전은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보면 된다.

 

불가의 경전은 실상이며,

환상적이거나 말로만 갑론 을박하는 경전이 아니다.

 

여타의 경전이나 철학적 논리 등은,

인간이 토론하고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 설전을 해왔으나,

 

불가의 팔만대장경은 법화 되어진 경전이며,

변하지 않는 세상 중심의 틀이다.

 

이것은 인간이 깨우침을 얻기 위한 구결과,

구결을 운용하는 다라니가 있는데,

구결은 모든 다라니를 득한 자가

운용하는 방법론이다.

 

불가의 경전은 다른 경전과 달라,

인간의 시작과 끝,

또는 우주만물의 생성과 끝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전해져있다.

 

반야심경은 이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면서,

인간으로 깨우칠 수 있는 최상의 길을 말한 경전이다.

 

즉 ; 이것은 어떤 일이던, 길이던 간에,

기본적인 것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듯,

깨달음도 깨달음의 궁극적 목적이

뭔가를 알아야하며,

궁극적 목적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경전이 전하는 뜻을,

만분의 일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을 말하면서 마음을 말한다거나,

수양의 방법을 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 된 것이다.

 

이것은 각자가, 자기 스스로의 마음을 주제하지 못하는데,

그 마음 처를 모르기 때문이며, 이것은 백날을 해도,

수박 겉핥기식의, 말뿐인 이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말하는 자들은,

마음을 보지도 못하면서 말하는,

한낮 허상의 존재를 말하기에,

마음 처를 직설한 반야의 이치를

공 사상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반야에서 주체적으로 설명한,

空이란 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른다는 것이다.

불교 뿐 아니라,

모든 종교적 개념들이 본말이 전도 되어,

잘못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모든 것이 열반 상태에 있다했다.

이것은 모든 것이,

열반상태에 있는 것을 실제로 보고 말을 한 것과,

보지 못하고 불가의 경전을 왜곡되이,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느끼어 말한 것과,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 사람은,

왜? 모든 것이 열반상태에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작용에 의해 열반상태에 있으며,

열반상태의 것은 어떻게 해야 열반에 들어갈 수 있고,

이것은 왜 열반상태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말한 사람은,

첫째 열반의 과정과 이치를 설명해야하며,

더 나아서는 열반의 과정을

실제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세존 당시, 여자도 도를 얻을 수 있으며,

부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용녀의 변신 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실상이지, 말로만 씨부리는 허세가 아닌 것이다.

만약 금생에도 불존의 말을 하는 자가 있어, 말은 하나,

실상의 이치를 보이지 못함은, 다 허망된 사견이다.

 

이것은 불가에서 심처를 증명하는데,

참으로 중요한 말이다.

 

큰중이든, 크게 깨달아 견성을 했던,

불존의 깨우침을 따르는 자들이,

말로만 부처의 진리를 말하며 닦으라 하면,

무엇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자들에게,

하릴없는 마음 타령만 할 밖에???

 

모든 열반상태의 대기 중인 중생은 물론,

자타일시 성불이 이루어 질 때,

모두 성불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법계가 뒤바뀌는 일로,

새로운 하늘(불세존)과,

새하늘(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는 과정이다.

 

이것을 일러 옛 선자들은,

‘인간사가 도무지 꿈속의 일이라.’ 이른 것이다.

 

반야심경은 이것이 일어나는 과정을 설명한 말로,

이것은 누가 해석을 하여 세상에 전했던,

반야심경의 요지는 다 같으며 변하지 않는다.

 

단지 이것을 재해석하여,

사견을 세운 자들의 생각이 다를 뿐이며,

제대로 해석하여 아는 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글을 쓰는 사람은, 종교 따위는 관심도 없으며,

단지 불가의 전한 경전이,

가장 삿된 견해를 배제 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기에,

불가의 경전을 말 할 뿐이다.

불가의 경전은,

인간이 알지 못하도록 방편 설한 것이면서,

그 핵심의 요지는 다 전한 것이 특징이다.

 

반야심경은,

모두가 공부한 인간들은 누구나가 알고 있듯,

공을 주체적으로 말하면서,

어느 과정을 탈피하기 위한 방법을 기술한 구결이다.

 

또한 가장 함축적이면서도, 쉽게 말을 해놨는데,

이것은 실상을 모르는 인간은,

만권의 경서를 읽어도 모르게 되어 있다.

 

이것을 안타까움에 말하고자 하나,

인연이 있는 자는 심고하여 생각해 볼일이며,

모든 것은 각자가 스스로

깨우쳐 반야에 이르는 길이니,

 

이것에 이르고 난 다음,

부처를 말하고 견성성불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야심경을 말한 설주는,

자재천이며(관세음 보살 이라고도 함),

이것은 사리자에게 한 말로,

현 법계를 벗어나는 과정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지견해탈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니,

이때는 전해진 모든 경전의 밀전을 알 수 있다.

불가의 경전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이 헛된 길을 걸었다는 것도 알게 되며,

없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며,

허상 속에 일을 말한 것도 아니다.

 

세상의 존재 이치와, 갑론 을박 하는 모든 것이,

웃기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석가세존이 49년 설법 후,

무법설 이라 한 실제의 뜻도 비로소 알게 된다.)

 

반야심경 의 주요지는,

설주께서 반야바라 밀다 행을 하시면서 겪은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밀다 행에 들어가면,

일어나는 현상과, 그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며,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방편론을 말한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반야바라 밀다행을 하게 되면은,

인간은 자기의 존재와,

타인의 존재 또는

시간과 법계의 흐름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자기 자신의 존재를 기준해서 본다면,

자기 생을 역해서 들어가고,

어린 시절 또는 과거 생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현생과 과거생의 결계를 들어가게 된다.

 

이곳은 인간이 말로만 전해 듣던,

지옥이나 기타의 법계를 거치게 되는데,

반야심경의 구결을 모르면,

들어간 육신(인간)은

삼천대천(나락, 암흑)의 세계로 흩어진다.

 

그래서 이곳은 인간으로는,

오로지 한 분(석가세존)만이 갔다왔다 하는 것이다.

 

이분을 다른 말로 박아범이라 한다.

이때 비로소,

인간들이 말로만 하는

마왕의 세계를 알게 되며, 보고 겪게 된다.

 

없는 것을 말해놨겠는가?

그러나 있기에 이 길을 가는 길을 설명하고,

이 길을 넘어서야,

비로소 다음 경전의 길을 알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모든 것이 열반 상태에 있음은,

이 길을 깨우친 자가 있어,

이 길을 인간에게 밝혀 주는 것이며,

당시의 석가세존은 그냥 갔다.

(왜 ? 그냥 갔는지는 나중에 >>>

 

이것 역시...

당시에도 불존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리한 것이며,

이것은 논리적, 이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면,

인간의 대갈통으로는 많은 세월이 소요된다.

 

그래서 많은 방편을 통해, 열반상태에 있게 한 것이며,

불가에서 사시공양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여래의 진실한 뜻을 모르는,

고로 알 길이 없는 것을,

백천 겁의 세월을 말해도 알 수 없으니,

이것이 인간의 업보이다.

(이것 역시 인간이 만든 것임)

 

그러나 인간이 갈수 있는 길은,

절대적 믿음에 있으니, 이것이 반야의 핵심이다.

 

이것을 성서에서 전하기를,

너희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거든

산을 들어 옮기 운다 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해야 할 몫으로,

신이나, 인간들이 믿는 하늘이 해주는 게 아니다.

 

인간은 여기서 말하는 믿음(반야)의 이치를 알게 되면,

한 인간이 능히 세상을 바꾸는 이치도 알게 된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것은,

인간의 고뇌 따위나,

열락을 위해 말해놓은 경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고뇌를 끊고, 번뇌를 끊어지게 한다면,

그렇다면 그 뒤에 뭣 하는가?

 

한 세상 여여히 살다가 간다, 몇 마디 씨부리면서....

그러면 그것은 소승인가? 대승인가?

이렇듯 조금만 분별할 수 있는 정변지가 있다면,

아집과 아만 따위의 식견으로,

알이 먼저 인가? 닭이 먼저인가?

논쟁은 불필요할 것이다.

 

어느 자가 깨우침을 얻어 견성 했다고 한다.

그것을 옆에 있는 넘은,

장사 속으로 대단하게 말한다.

우리 곁에 왔다 가신 부처이니,

누구누구는 생불이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견성 했다면, 견성한 지넘이, 지 성품 본 것 아닌가?

그리고 어른 노릇하고,

뭇 중생들에게 가르킴을 폈다고 치자 ...

그것이 머 별거 있는가?

또는 이것은 대승의 도인가? 소승의 길인가?

 

이것은 성불이 아니며,

열반의 심법이 무엇인지 조차도 알지 못한다.

괜시리, 속해 있는 어느 집단에서,

한 식객 하다가 가는 것 아닌가?

이것이 성불이나, 열반이라면,

불존은 거짓을 말 한 것이고,

윤회가 있던, 없던, 다른 세계가 있던, 없던 간에,

그냥 자연적으로 돌아가는, 이치 설명 뿐,

아무것도 아니질 아닌가?

 

인간이 나면 병들고, 늙고, 죽는 것, 누가 모르는가?

이러한 가운데, 이 길을 벗어나는 길을 말하신 것인데,

이것을 인간이 선한 과보를 쌓음으로,

후일 그 길에 닿게 된다고 하신 것이 주요 지 아닌가?

또는 이것을, 방편은 다르지만,

선한 과보가 아니라도

얻을 수 있음을 말한 것도 있다.

 

그래서 과거 불존이 전한 뜻은,

시간이 세월이 지나면,

본 뜻을 아는 자가 없게 된다고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세월이 흘러오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세월 따라 묻혀서 지나가기 때문 아닌가?

 

이러한 것에 기초를 두고,

모든 종교가 이런 저런 말이 분분하나,

실상 어느 하나 해답을 가진 자들이 없지 않은가?^^

 

무슨 깨우침이 죽으러 가는 길이며,

무슨 구원을 죽어서 받는 길이 되어,

자기 자신들도 모르는 사후 세계를,

책 몇 권 가지고 그리들 가르키는지...???

 

위에서 다라니를 잠시 말했는데,

다라니를 해석하고 공부하여,

머리속에 집어넣은 것을 머라하는가?

 

이것을 깨우침이라 하는가?

이것 역시 식견이며, 이것은 해석한자가,

각자가 그 말씀 중 자기의 사견으로

생각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라니를 득했다고 하자,

말은 아, 와 어가 다르듯,

다라니를 득한 것은,

다라니의 주요지를 득했다는 말 일 것이며,

아마도 이것은 인간들이 뭣인 줄도 모르고 쓰는,

도 의 맥을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아마도 불존이 원년에 사구계를 득하는 것은,

어느 복보다 크다 한 것은,

불존의 사십구년 설법한

다라니를 득하는 과정을 말한 것 일게다.

 

이것이 석존으로 부터 받는 도 맥이며,

이것을 받은 자는 깨우칠 것이 무엇인가?

원년에 석존이 말한 뜻과,

그의 심처를 다 알 것 아닌가?^^

 

그리고 불존이 열반에 들었다거나, 죽었다 한다면,

불자라고 하면서

지아비를 죽었다 하는 것과 무에 다른가?

 

불존은 열반에 든 적 없고, 단지 방편상 그리한 것이며,

이것은 중생을 열반상태로 이끌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전해진 천부경에도 나와 있는데,

일묘연 만왕만래 가 그것이다.

천부경은 언뜻 81자의 문구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모든 이치를 함축한 경전이며,

이것을 풀어 말하기는 너무도 많은 분량이다.

 

실제 반야심경도...

제목인 반야를 설명해서 이치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마도 8톤 차량으로 한차는 될 것이다.

단지 반야심경의 본뜻을 왜곡하지 않으려거든,

실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쓸데없는 알음알이는 필요치 않으며,

그 길에 직접 들어가 보면 알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모든 경전이 전하는 기본 의중은,

밝고 선행의 과보를 쌓게 되어,

이 길을 만날 때 어려움이 없이하라 경계한 것이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육바라밀이라 한 것이다.

 

실제 반야의 구결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금생이나 전생의 카르마가 걸쳐진다면,

이것은 부처가 되는 목전에서도,

지옥으로 연결되어 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예행연습이 필요하듯,

인간의 인생도 많은 세월 속에서 반복되어 지는데,

무조건 반복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카르마에 장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육 바라밀을 거쳐 온 생이라면,

장애를 쉽게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야를 마쳐 부처가 된다 해도,

불가의 경전이 팔만경전이며,

사해가 사천경전이다.

 

단지 한 과정을 거쳐서,

오지 않고, 가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본인들이 선택하는 것이며,

이것을 마치면, 선 후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들만의 세계에서 할 수 있는 말아닐까?

 

가끔은 인간 세에서 가고 오는 것이 없다 하는데, ^^ ㅎ

지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인가?

또한 죽고 싶어 죽는가?

 

이글을 쓰는 것은 아무런 의도가 없다.

단지 세상 속에서,

하나의 식으로 이런 길을 가고자 하는 자는,

새롭게 각성하여, 지금껏 공부는 했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접근 해보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