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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이원론에 대한 질문입니다. / 2011-06-24 07:43

category 2011년/6월 2024. 2. 2. 12:03

실체이원론에 대한 질문입니다.

2011-06-24 07:43

 

 

왜 살지 들

심심 하니께 ^^

알던지 모르던지 믿던지 말던지 몇 줄 쫙 ~~

 

인간은 생각 한다, 고로 존재 한다.

이 말의 의미만 알아도,

이원론에 대한 것을 쉽게 이해가 될 텐데요.

 

가장 쉬운 것은

자기가 직접 겪어 아는 경험이 가장 쉽겠지요.

그러나 이 경험을 직접격어 경험한자라면,

그는 각인자입니다.

 

그러나 앎(깨우친 자)에도,

‘진’과 ‘가’ 가 있겠지요.

‘진’은 행하고,

‘가’는 알고만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가의 구분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아는 자 없을 겁니다.

 

마음과 몸은 당연히 별개입니다.

마음은 몸과 상호작용할 수 없습니다.

 

생각과 관념, 개념 따위는 몸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경계를 못 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상호작용을 한다면

그는 ‘신’입니다.

인신을 입은 인성의 신이지요.

 

철학은 논리적 사고로,

의식계 내지 무의식계를,

탐구하여 깨우치는 길입니다.

 

그래서 플라톤과 히포크라테스는,

마음의 존재를 인간의 몸에서 찾고자 하여,

현대 의술의 시초가 되었다 합니다.

 

그러나 철학적 탐구로는,

마음의 존재를 알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습니다.

 

과거의 부처님도 그래서,

‘과거 삼세의 부처가 마음을 보지 못했다.’

했습니다.

 

생각?

님이 말하고 느끼고

화내고 사고하는 것은 님 입니까?

분명 님입니다.

그러나 님이 아니지요.

 

만약에 님이라면

부지불식중에, 여타한 여건 중에, 황망 중에,

어느 경우라도,

님이 알고, 님이 통제합니다.

이것이 생각입니다.

 

그러나 생각과 마음은 다르지요

 

마음이 몸을 따르고,

몸이 마음을 따르는...

다른 말로 상호 작용이라 해두지요.

 

이런 상태가 된다면...

정중동 동중정이

기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현대물리학의 나비효과라는 학설을

실증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학설 역시

현대 발견된 학설이 아니며,

오래전 고대부터 실존했던 실증 들입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이원론은 학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이기 때문에,

인간은 느낄 수는 있으나,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님이

마음의 존재를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볼 수 있던, 보지 못 하던,

마음의 상을 구하였다면,

님이 마음을 일으켜,

원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러한 것을 일러,

옛 부터 한 마음 일으켜,

세상에 살겁을 내리기도 하고,

세상을 편하게

다스리기도 한다 한 것 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라도

이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단 하나!

이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그 만이,

그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몸에 사리가 있습니다.

 

땡중들이 말하는 뒈져서 나오는

그런 사리가 아니라.

진짜 불사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는 죽지를 않습니다.

 

사리는 세 가지로 분별 할 수 있습니다.

불 사리와,

법 사리와,

승 사리입니다.

 

인간이 수행의 길에서,

정을 거두어 이루는 것이 승사리 입니다.

 

법사리와 불사리는,

인간이 가질 수도 허락될 수도 없으니,

말하나 마나입니다.

 

불사리는 진신사리로,

이러한 분이 나타난다면 그는 생불입니다.

 

도가 경문, 또는 불가 선맥의 경문에,

비전 중에 이러한 구절이 전해집니다.

 

사리 한 알의 광이

삼천대천을 집어삼킨다. 합니다.

(여조가 전한

동화정맥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리자만이 마음을 쓸 수 있습니다.

전하는 경전에는 전신사리불이라 합니다.

또는 사리자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철학적 개념으로

마음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존재마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마음을 ‘사용’하는 것.

그 것을 이 나라 전하는 경전에는,

‘용사’한다 한 것입니다.

ㅎㅎ^^ 이렇듯 말해도...

각 부의 경전부터,

옛 전하는 고서(고문진보)까지

알아야 가능 하겠지요.

 

마음의 존재를 찾으려 애쓸 필요 없습니다.

님이 그라면, 님에게 마음이 있을 테니까요 ^^

인간에게 없는 그 마음,

아니, 존재하나 그러나 찾지 못하는 것,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옛 부터 도라는 것은,

몸 밖에서 찾을 수 없고,

몸에 있으나

몸 안에서도 찾지 못한다 한 것입니다.

 

겸손입니다.

하심입니다.

그리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 세월이 천년이 만년이 흐른다 해도,

오직 일심으로 그 길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구도자의 길이라 합니다.

 

그러니 애써 찾으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처도 보지 못한 마음을,

굳이 알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려하는 것은 의구심 입니다.

또 다른 생각이지요.

그러나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랍니다.

 

인간은 집중하면,

의념이 상을 만듭니다.

이것은 생각의 상입니다.^^

유체라고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