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불도수련 선도수련에 관한 질문입니다.(진정한 고수님만 답변바랍니다.)

2011-06-27 14:54

 

 

 

질문하신 분은 몸과 마음이 하나입니까?

아니면 몸은 무엇이고

마음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선가에 대해서

나름 많은 공부를 하신 것 같은데

질문에 님이 말한 명칭은

모두가 같은 말입니다.

 

하나를 제대로 알면 모든 것은 ‘無가’ 됩니다.

 

여기서 ‘무’라는 것은

일체 배운 ‘식’과 ‘행’이

‘무’가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부터는 방편상 말할 뿐이며

비유로 말하는 것으로

말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러하지 않다면

이렇게 쓰는 글 자체에서도

법계는 실상을 나타내고

마음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

일천성이 크게 살겁을 발해지게 되어

죽은 시체가 사방에 즐비하게

널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처가 깨달은 궁극의 도가 바로 이 길이며

진실로 깨달아 알면 허무하고 허무하니

중생을 연민하는 것입니다.

 

허무하니 아무것도 없는 공이 아니라

허허로움에 세상을 바라보며

무심하든 관여케 되면

그 행은...

옛일이나 현재나 마찬가지 일겁니다.

 

간단히 불도의 수련은 성불에 이르는 길이며

성불이란?

불을 이루는 것입니다.

선도의 수련 역시 같은 것입니다.

 

불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선도에서 수련하는 행식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옛 부처가 수련의 길을 가르키지 않고

인간의 수행의 길만을 말한 것은

인간(중생)은 가는 길이 멀고 험하기에

하나로 인해서 자타일시 성불을 기원하는

방편을 취한 것입니다.

 

이러함이 그릇 인식되어

종교화되고 파당을 나누어

자기의 견해를 수행이나 수련의 가치로

가르킨 것뿐입니다.

 

그러나 선맥에서

바른 구도의 길을 가르켜 줄 때

‘도반’을 중요시하고

‘명사’를 중요시 말한 까닭은

여기에 진리로 향하는

‘길’이 있기 때문이며

 

도반은...

그 중 누군가 하나는

인연이 다해 필히 깨어나기 때문이며

그래서 화두를 방편 했던 것입니다.

 

명사는 일찍이 스승이 스승이지

스승과 제자가 뒤바뀌지는 않습니다.

 

만약 뒤바뀐다면

그저 이 역시 윤회 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일 뿐입니다.

 

도의 시작은 태시부터이며

이를 처음가르킨 자는 청니인 노자이며

이를 시행한자는 장자방인 장자입니다.

 

이를 노장의 도라 하며

실제 시행은 이를 ‘용사’한다고 합니다.

 

즉신 견성에 이르며

즉신 성불의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로부터 시작하며

시작한 하나에서 만법이 파생하니

다시 돌아가는 그 시간이

만법귀일의 이치입니다.

 

하나 이전에는 이를 ‘공’이라 하며

선가에서는 ‘허무’라 합니다.

 

하나에서 둘이 되는 이치를 음·양이라 하며

음양이 하나로 들면

이를 ‘무기’ 즉 ‘무극’이라 합니다.

 

이러한 무극의 이치를 방편 하여 전한 것이

‘황극’의 도입니다.

 

노장의 근본적인 도는 황제의 ‘도’로서

우주와 지구 그리고 자아 기신입니다.

 

‘사성’은 세상을 말하며

이를 운삼 사성이라 합니다.

 

성환 오칠 하며 대삼 합육 입니다.

 

‘삼성’은 ‘사성’을 운용하며

삼성은 ‘삼신’ 또는 삼위 또는 ‘신’이라 합니다.

 

삼태는 허정이며

육순 곡생 하는 것입니다.

 

‘사성’은 물질계이며 피조물이라 합니다.

 

이것이 칠성에 감춰진 비밀 비전입니다.

 

양파 껍질을 까고 까면

그 안에 보이는 실상은 없습니다.

 

부처가 말한 가르킴 중에

과거 삼세의 부처도

이 마음을 본 자가 없다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는...

볼 수 없는 이 마음을 설했으며

선가의 모든 선지식들이

이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중생)들이

이러한 마음을 말함은 그저 ‘공’일뿐입니다.

 

인간이 흐르는 바람결을 느끼고

존재 하기는 하나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음은 이러함입니다.

 

이러한 바람을

잡으려 하는 것 같이 어리석은 이 없고

바람을

소유하려는 자 같이 어리석은 바 없으니

 

도를 구하면서

그 실상을 말로 가르킨다는 것 같이

어리석은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 또한 문자로서 이해하고자 하며

가르킴으로서 득 하고자 한다면

이 역시 중생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방편은

그저 행식에 따른 방편의 도움이 되고

그 견해를 일깨우는데

하나의 식에 방편일 뿐입니다.

 

역대로 부처 이후에

그 도를 펼친 자가 몇 있었으나

그 실상을 나타내보이지는 않았으니

다만 하늘이라 이름 했을 뿐입니다.

 

‘성인’이 도를 득하여 나타냄은

이를 ‘의세’로 세상에 나타내보이며

 

‘근본’이 그 도를 거두어들임은

‘대마왕’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사탄’과 ‘성인’의 차이입니다.

 

근본 서두에...

항상 몇 자 갈겨대듯이 선악이 없으며

하늘과 땅 차이라하나

하늘과 땅은 그 경계가 없습니다.

 

‘식’은 식자우환이 될 수도 있으니

모름지기 구도자는

항상 경계해야 할일 일 것 입니다.

 

그러나 바른 식은 수상행식이라 했으며

이거이 무수상 행식에 들게 되는 것이며

즉신 득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분별 할 수 있는 지혜가 없기에

분별치 말라 한 것을...

스스로 분별하여 집을 짓게 되면은

스스로 지은 집일 뿐 입니다.

 

세상을 언어로 유희하게 되면은

무작보다 못하고

스스로 범망경에 걸려드니

어느 세월에 자성을 찾을까?

하는 것입니다.

 

본래 자성이 공함을 안다 함은

이는 말이나 경험이 아닌

그저 그대로 깨우쳐 그 길에 설 수 있으니

이를 부처라 합니다.

 

이는 모르고서 허무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 스스로 아는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백치’라 하며

생각을 끊어버리는 것을 말함입니다.

 

이것이 마음의 상을 구하는 것이며

행 없는 행을 하는 것이니

‘무수상행식’이라 합니다.

 

정법을 구하매...

이는 식(배움)으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는 언어로 말함이나 배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허무에서 구하며 허무에서 놓아 버리니

그 행이 행 없는 행이라 할 것입니다.

 

찰나에 팔만 정법을 취하며

팔만 정법이 무량하여 무량경이라 합니다.

 

이를 수기에 있으니

선문에서 전하기를

도가 팔백공도에 이른 자만이

그 도를 취 할 수 있다 한 것입니다.

 

사천의 경문은 죽음의 경문이니

이를 ‘아미타경’이라 합니다.

 

중생이...

자기 아미를 보지 못하면서 죽음의 도를 말하면

저 죽을 날도 모르면서

남의 운명을 말함과 같습니다.

 

세상이 언어로 유희를 하게 되면은

그것은 막장 시대로

삶의 장막이 다 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세상은 언어로 혼돈을 겪고

그 혼돈은 정법을 파괴하는 결과를 나타내니

정법이 이를 무량의로 세상에 맞춰주나

결국 모든 것들은 길을 찾지 못하고

혼돈에 들게 되어 윤전 도에 들게 됩니다.

 

지구는 자전과 더불어 윤전하니

이것이 ‘인력’과 ‘중력’의 법칙입니다.,

 

진법이란? 법칙과 논리가 없습니다.

 

고정화된 실상이 실상이 아니라 한 것도

이것을 가르킨 말입니다.

 

도라는 것은 본디 대도는 무문이니

이것이 진법입니다.

 

현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도를 말한다.

현문이..

어느 곳에 있는지를 모르면서 도를 말한다.

 

이는 하늘로 가는 길을 모르면서

하늘을 말함과 같으니

누구나 다들 자기 몸속에 있고

그것을 찾고자 하나 현빈을 모르니

이를 안다 하는 자는 중생들 중에는

단 하나도 없으니

이를 가르킨 바

실상의 진리는

衆妙之問(중묘지문)이라 한 것이다.

 

게놈 = 개놈들 ^^

유전자 지도를 게놈이라 한다.

 

그러나 인간이 백날 대명천지를 찾아도

캄챠카를 찾지 못한다.

 

이는 마치 자기 몸 안에 텐산.

즉 텐진이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함과 같다.

 

그렇다고 바이칼호수에 가서

자기 몸과 맞춰 보고자 하는 놈은

그래도 열공 하는 것이니

이는 진정한 구도라도 하고자 하는 것이니

완전히 몸으로 때우는 것이지...

 

찬 대가리에 광휘가 빛나서

그것을 후광이라 해도 형설의 공이라...

반딧불이 비추는 불정도 인 것을...

 

그러나 이러한 도도 얻기가 어려우니

칠흑 야밤에 독사가 우글거리는 길을 걸으면서도

띠는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 ^^

 

그러기에 道心(도심)

照心(조심)이라한것 아닌가?

 

이것을 불가에서는

자등명 법등명이라 한 것이다.

 

두타제일이라 한 것은

‘하심’과 ‘진실’이다.

 

대갈통 밀고 즉종좌기하여 우견합장하고

여래시여 진실로 대하는 이것?^^

 

어찌 ‘선문’과 ‘불문’이 다르겠는가?

 

‘선’에서 시작하고

‘유’에서 가르키며

‘불’에서 이루는 것을

인간이 망종하여 스스로 집을 짓는 것이다.

 

스스로 집을 지은 것을

누가 있어 어찌 그 집을 허물고

다시 지어 주려하겠는가?

 

잘못된 집을 고쳐 다시 짓고자 함은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해야 될 일이니

 

과거의 선지식이 일러 말하기를

고집멸도 적멸위락이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