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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전지전능모순논증을 '신에겐 시간없다'로 깰수있다 착각이유

2010.11.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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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말하더라도

 

‘전지’란 님 말대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전능’이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행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님이 도킨스의 말을 빌어서 전능에 대해서 사고하였는데

 

미래를 안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매우 중요한 논리이며 맞는 말입니다.

미래를 아는데 미래를 바꾸지 못할 일이 없겠지요.

 

만약에 미래를 알고 있다.

님이 제시한 말 대로 내일 비가 온다.

그렇다면 내일 오는 비를 오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전능의 논리입니다.

 

더욱 강도가 높은 전능의 단계로 가면

세상은 시간이 지배하는 법계이다.

 

전능하다면 시간도 멈출 수 있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더 심한 단계로 말하면

현재의 시간을 과거로 돌린다.

 

세상은 존재하는데

존재하는 세상이 과거의 시대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세상은 멸망 하는가?

아니면 세상은 존재하면서 과거로 회귀하는가?

 

세상은 존재하면서 과거로 회귀한다.

이것이 전능의 정의 입니다.

 

유독 이 나라에서는

1999년에서 2002년까지

특히 2001년 ~ 2002년까지

기상청의 예보자료를 확인해보면 나타나겠지만

거의 하루도 기사예보가 맞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우연이라 하면 그것은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도

거짓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능이란 개념을

자기들의 조건에 맞추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필연이라 느낀다면

이것은 전능한 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입니다.

 

당시 전라북도 전주에는 겨울인데도

눈 한 티끌 내리지 않았습니다.

 

기후에 대해서

너무도 횡횡한 말이 돌아 유언비어가 도니

약간의 눈발이 비쳤지만

 

그 지역의 단 한곳 아주 작은 지역만큼은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필연적 작용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현대 인류의 문명이 생긴 이래 최악의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란 말이 처음 등장 하였습니다.

 

적어도 근대 사회에서는

언론이나 매체에서 처음 등장한 말입니다.

 

당시 인간은 기하급수적으로 희생자를 내었고

이 나라에서는 방송매체에서

대표적 사대종교를 근간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당시 인터뷰 한 종교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일겁니다.

 

기독교는 답을

영감이 통하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과 영감도 안 통하는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천주교는

62년도 이후로 공소를 폐지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불교는

자연의 이치는 성주괴공 하니 그것을 어찌합니까?

그렇다면 조ㅅ빤다고 닦고 자시고

깨닫고 할 게 머가 있을까?

 

원불교

정신이 바로 되지 못한 결과이니 물질개벽을 통하여

현대사회에 맞게 공부하고 깨우쳐야 합니다.

 

이중에 답이 있습니까?^^

 

그 어느 곳에도 답이 없지요.

 

아는 것과 해결 할 수 있는 답과는 다르답니다.

 

위 종교 중 그래도 알고 답한 종교는 천주교입니다.

 

위의 천주교.

공소라는 것은

일반적인 천주교인들의 회의를 말한 게 아니라

본디 교황청에서 받는 계시가 끊겼다는 것을 말함으로

그것이 62년도 이후 폐지되었다는 말입니다.

 

미래를 안다. ^^

 

그러나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은

미래는 그 누구도 안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대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자라면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해도

일반적 상황에서의 인식은

나타나는 현상, 그것이 미래일 뿐입니다.

 

전지와 전능은...

중심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결과물이므로

이것을 논증 하려거든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 신이든 도통을 한 자이든

결국 그러한 자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하며

안다는 것은

그러한 존재와 만남이 있어야 가능한일 일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만남 가운데서도 알지 못 함은

무지에 있으며

무명의 존재는 아무리 인연을 가져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연은

중생이 그로 인하여

손해를 보거나 해를 입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다만 세상사의 이득은

그것이 세상사의 것일 뿐.

실상은 꿈마저 깨지 못 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법명이 능인입니다.

 

이 말은 석가모니가

능력이 없는 단순한 일반적 중생과 같다는 말이 아니라

다름을 알고 있는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의 진의는 유마경에 여실히 나타납니다.

 

십대 제자들마저 긴가 민가

단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에

그것을 배우려만 할 뿐

스스로를 닦는데 게으르다는 말이며

스스로 깨우쳐 아는 것이 없어

집을 놓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여래는 ‘타타타’ 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침묵하나

이 나라 대중 속에서 저희가 저도모르면서 부르는 노래가

신신애의 짝퉁들^^

 

깨닫는다.

말로는하나 깨우친 자가 없으니...

김국환이의 타타타 ^^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모르는 것이 ‘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라는 것은 그냥 살다 가는 것이야.

 

옳고 그름도 바르고 그름도 모르고

먹기 위해 살고 살기위해 살고 그러다 죽고

그것이 중생들이라 한 겁니다.

 

말은 말로서 하니 말법이고

그것이...

필히 봐야 정신을 차리겠다 하게 되면

 

이것을...

필마로 돌아드니 인걸은 간 곳 없고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 이련가 하노라 하는 것입니다.

 

말법은 ‘검’을 말하니

‘메시야’의 출현을 나타내는 것이며

 

필법은 ‘도’를 말하니

‘일도패왕’의 출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필’을 가르켜 도가에서는 ‘무정검’이라 하니

옛 인류의 종말 이전에도 그는 존재했었으며

 

그가 ‘무정검’ 이라 한 연유는

연민유정을 끊어버리기에 그리한 거이다.

 

이를 일러 ‘파천황’ 이라 하며

독수성자 또는 독생자라 한 거입니다.^^

 

옛 전하기를 그는

갈대밭에 홀로선 황약사라 하기도 하는데...

 

님들아!

그대들 인체의 무수한 혈명은

누가 지어 부르고 만들었으며

우주의 저 하늘에 별들은

누가 만들었겠는가?

 

바오밥 나무아래 작은왕자라하나

그는 세상의 주인이며 세상의 왕 중의 왕이라.

스스로를 돌고 돌아 윤회를 돌리니

이를 일묘연만왕만래 라 한 것이며

그가 윤회의 겁을 마치고 성불하지 아니함을

미륵이라 하는 것이다.

 

본심 본은 태양앙명인이니

이는 인중천지일이라 한 거랍니다.

 

이것은 ‘변 부동본’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니

알고 깨우치라 한 거랍니다.

 

가히 그 앞에 설 자가 없다하니

하늘도 그 앞에서 두려워 떨게 되며

땅은 놀라 울부짖는다.

 

살려고 껄떡거리나

살고자해서 살지 못하고 죽고자 해서 죽지 못하니

모두가 육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에 그러합니다.^^

 

가히 인간이 절대의 능력이나 지혜를 말할 수 없으니

보게 되면 슬픈 연가요

스스로 심장을 도려내듯

그 고통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니

주어진 시간동안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가진 것 없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된다 함은

10000원이 전 재산인 사람은

그 만원을 내 놓기가 마음 한 번에 아주 쉬우나

 

천억이든 그 보다 더한 것을 가진 이는

천억 중에 구백 억은 내 놓을 수가 있으나

모두를 다 내 놓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 그리한 거입니다.

 

^^그렇다고 개똥철학을 읊어대는

종교에 그리 하라는 말아니며

이는 중생의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도(眞道)란 이와 같은 것이랍니다.

 

중생은 나고 죽고 멸하고 그 행업에 따라 이루어지니

이것을 무위도라 한 거랍니다.

 

중생이 진도를 들을 수 있고 만날 수 있음이여

세상이 시작한 연후로 세 번이 있었으니

 

그 세 번을 말 후로 돌림은

당시 비록 진도를 만났으나

성숙하지 못함이기에 성숙하기 위함이요.

 

이를 잡아 돌려

그 안에서 자기를 보라는 선맥의 일성은

삼천 대천이 쪼개지고 부수어져도

오직 갈 길이 있음을 경고한 것이며

 

더욱 성숙하여 말 후에

구현 칠조의 오랜 세월 이어온 아픔을 알라는 말이니

이 말이 깨어있으라는 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