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산야가 없나요?
2009-02-19 16:30
산야에서 떠났는데 가르키고
설법은 어떻게 했냐? 이것 인가요? ^ ^
설법은 방편의 일부 입니다.
모든 산야를 떠나도
범부를 가르키기 위해서는
범부의 말을 해야 알아듣지요.
물론 말하는 것을
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학생이 커서 대학생이 되었다고
고등 과정을 모르는 것 아니지요.
고등과정에 있는 학인을 가르킬 때는
고등 과정의 수준으로 가르킵니다.
모든 일체의...
관념과 인식과 심상을 떠나 있어도
가르키기 위해서는
중생의 수준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하시라도...
산야를 떠난 상태로 머물기 때문에
부처라 할 수 있는 겁니다.
말이나 글쓰기는
습득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습에 의한 것입니다.
본래 묵언이나 정진은
자기 자신의 고요 속으로 돌아가
다시 정립하여 보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보기 위함이며
그 바탕 속에서 진실 된 마음을 찾습니다.
ㅎㅎ 그러나 중생은
자기 자신의 마음도 분별 할 수 없답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마음.
이것은 참으로 분별하기 어려운 것 이지요.
모두가 해탈한다 합니다.
해탈이란 의미부터 해탈을 말하는 자신이
명확히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번뇌를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에게는 번뇌가 없습니다.
심상을 알고 심상을 알기에
버릴 줄도 압니다.
그리고 부처에게 산야가 없다는 말은
질문하신 요지의 뜻이 아니고 다른 말입니다.
금강에 이르기를...
분별심을 내지 말라 한 것은
스스로 깨쳤다하는 바가
깨우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며
이것은 실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의 길을 가는 초입문의 길은
분별을 할 수 있는 지혜(정변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한 대로 글은 글일 뿐이며
이것은 방편의 구도이지
실상 말하는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운용 할 때부터
‘입류’에 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가 간 길을 깨우치고자
알고 시작 하는 것부터가 입류 이나
실제 깨우쳐서
부처라 깨우치는 순간이 입류 입니다.^^
직역 하여 반야가 기본이나
중생에게 반야가 종착이며
이때 비로소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사람이 쓴 글들은
여러 ‘연’이 스스로 깨우치기를 바랄 뿐이지
답을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도(원)를 구하거나 그 길이 있기에
그 길을 따르는 자는
‘행은’이 먼저인 것을 알아
허공 속에 보여 지는 모습을 기억하고
얼마지 않는 시간에
기억한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출처] 부처님은 산야가 없나요? / 2009-02-19 16:30| 작성자 온전히 완전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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