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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를 찾을수 있을까요? / 2011-10-27 20:55

category 2011년/10월 2024. 2. 17. 09:45

과연 나를 찾을수 있을까요?

2011-10-27 20:55

 

 

‘나’라는 존재?

 

찾아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중생 또는 인간은

‘나’라는 존재를 죽었다 깨어나도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나’라는 존재를 없다 하는

일반적인 입장과는 전혀 다르게

‘나’라는 존재가 없다 함은 그 내용이 전혀 다르지만

일반적인 입장에서 ‘나’가 없다 함은

그저 ‘나’가 없다 하는 말일 뿐이고

알고서 ‘나’가 없다 함은

중생이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즉 불가에서 중생 모두가 불성이 있다 함과

불성이 있다 하여 부처가 아니라는 것은

엄연히 그 뜻이 같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고 모름이 백지 한 장 차이나

이 역시 하늘과 땅은 서로 맞닿아 있으나

시공계를 벌리어 그 공간이 무량 하기 때문에

시간의 개념이 작용하며

우주의 이치 중 지구상 자기장 내의 원리가

시공계를 작용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도’를 말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거나

지식을 접해 봤을 듯한 문구가

‘도’란 내 몸 안에 있으며

그러나 내 몸 안에서 찾을 수 없다 합니다.

 

또한 더구나 몸 밖에서는

찾기가 더더욱 어렵다 합니다.

 

이 말인즉 결국 의구 하시는

‘나’란 존재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지구상 인구가 70억 100억이 되어도

결국 이 뜻을 아는 자 없을 것이며

이 뜻을 아는 자.

이 나라에서는 일찍이 그를 가르켜

성통 공완자라 하였으니

이 말 역시 본래 성품이 공한 것을

깨달아 아는 자를 가르키는 말 일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래 성품이 ‘공’하다는 것,

불가의 법성이 ‘공’함을

깨우쳐 안다 함과 같은 말일 진데

누구나 불가의 귀동냥이나

경전을 일견 ‘식’하여 알음이라도 했거든

다 써먹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법성이 ‘공’하다는 것을

말로만 하는 것이라는 것.

이것은 그들이 말은 하나 실제로 실상 하지 못하니

이를 일러 실상묘법을 모른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법화’는 묘법연화경이라 하기도 하는데

묘법을 실상 묘법이라 한 것은

이미 지나간 세월에 깨우친 자가

묘법을 실현하였기 때문에 실상 묘법 연화이며

그가 일러 말하기를...

인간으로 이 길을 간 자는 그 전자에도 없으며

그 후에도 없는 전무후무한 길 이라 한 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자가 그 길을 전에 걸었으니

이를 ‘아마타불’ 이라 합니다.

 

내가 하는 이 말은

이미 경전에 기록되어 전하는 말이며

이사람이 이곳 지식란들에

길고도 긴 ‘도’의 내력을 짧게나마 설명하여

답글 들을 달아 보임은

그저 그러한 길이 허무한 길 이라는 것에서

바른 알음과 바른 깨달음에 이르러

바른 길 들을 찾으라는 뜻에서였습니다.

 

님들이 말하듯 가르켜 줘서 갈 수 있는 길.

정성이나 수행으로 갈 수 있는 길이었다면

굳이 이렇듯 보이지 않는 지면에서

굳이 시간을 할애해 가면서

이러한 부연을 하지 않았을 것을...

 

인간은 누구나 자기 욕망으로 인하여 길을 찾고자 하나

불가에서 그 길을 찾고자 함은

그는 응당 ‘수기자’ 일 것이며

그 이외에는 마땅한 이가 없으니 당연히 불세출 이후에

‘불’이 세상에 나타내지 않는 것입니다.

 

십여년이 넘어서는 세월 전에

이 나라 인민이 천손이라 하는 이들이 모인 사단법인에

이 나라 민족사를 연구하여

민족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것은

인간은 결국 누구나 자기 욕망과 욕심에서

자기 목적을 향한 구현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마치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거나

어느 목적을 향해서 길을 가지만

결국 그 길에 이르러서는

이룬 것을 나누어야 하는 배분의 원칙과

또는 자기 당위성을 주장하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순교’란 ‘희생’이며

희생은 기쁜 삶을 살기 위한 자기 방편이나

현대의 세상은 오히려 그러함이 지장이 되어

그 길에 서기가 더욱 어려운 세대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자기 희생을 하는 조건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다면

그가 하늘이며 이러한 하늘의 사역은

이생 한 생이 아닌

지나간 숱한 생에서 걸어온 길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주변에 모인 이들이

이름만 대어도 알만한 이들이지만

그들이 한결같이 묻는 질문은

언제 세상이 끝나냐는 것입니다.

 

그저 웃으며 답한 말은...

글쎄 그것은 끝내고 싶은 놈이 알아서 끝내겠지...

 

그러나 세상은 불완전해도

불완전한 데로 그 아름다움이 있는 것 아닐까?

 

세상은 벌레나 짐승도 죽이려 하면

살려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대들은 하물며 인간으로 태어나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좋다 하더라.

 

무엇이 그리 떳떳하여 세상의 마지막을 알고자 할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왜 태어나고?

죽음을 거역치 못하고 죽어가며

죽어서 어디로 가는 곳 모를 텐데

깨달음이 대수고 ‘도’란 것이 별것 있는가?

하였더랩니다.

 

그러나 이 나라 전해진 ‘도’란

이 역시 성통 공완자라 하였으니

이는 자기를 비워서 성품을 통하여 아는 것이 아니고

이 나라에서 전하는 ‘궁을도’이며

서양에서 전해지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말합니다.

 

헤르메스의 지팡이란?

본래 이 나라 구산의 선문에 전해졌으며

이것이 유래가 되어

절간에서 중 놈들이 알지 못하면서

‘주장자’를 그 유래로 전한 것입니다.

 

‘성통’이란 본래 마음을 칼로 자르듯 하여 자르니

이를 도리천이라 하며 위로는 야마천이라 하였고

그 위로는 도솔천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화락천이요 대자재천입니다.

 

불가의 ‘사천왕’은 신앙이 혼합된 것이 아니라

본래 법장을 수호하여 이르는 것을 말하고

법장이 사방으로 나투어

그 ‘신’이 사방천을 수호하기에 사천왕이라 합니다.

 

‘법장’이란 본래 법장 비구 아미타를 상징하는 말이며

이를 ‘정법안장’ 이라 하여 방편 하였는데

이것이 ‘도’의 내력입니다.

 

즉 ‘도’라는 말입니다.

 

일찍이 선문에서 이를 방편하여 말하기를

‘도’란 알고도 모르고 모르고도 아니

이것이 ‘무기’라 한 것인데

 

‘무기’란? 몸의 언어.

無記(무기)입니다.

 

즉 몸 ‘기’에 말씀 ‘언’ 이니

이는 보는 자는 보고 일반은 보아도 모르니 없을 無.

‘무기’라 한 것입니다.

 

이거이 업연의 작용인데

인간이 살다 보면 몸에 병이 오게 되고

그 병은 ‘기’로서 발병하니

이 글을 보는 분들중에

감각이 영민하여 스스로 느낀 자들도 있을터이나

이것이 자기 마음대로 못하니

이는 묵언이나 장자불와를 하여도 이르는 것이니

행 없는 행. 즉 마음의 상으로 ‘행’하라 이른 바입니다.

 

인간의 업연은

표피나 뼈골 속까지도 파고드는 존재가 있으니

이 역시 몸에서 병을 일으키기도 하며

업연의 작용을 합니다.

 

공하고 없다 하나 알지 못함이며

또한 있다 하나 이 역시 ‘허무진’이니

무노진 무노사라 한 것입니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사리불’이라 하며

고액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를 말하면서

반야가 기본이면서도

인간이 가야 하는 마지막 성취의 길이라 한 것입니다.

 

기본도 모르는데 금강신이야!

하물며 묘법 연화라 하니...

아무리 과거 석가모니가

중생이 안타까워 자비들여 가르켰지만

결국 석가모니도 자비를 거둠은

중생이 곧 시체다는 것입니다.

 

깨어서 깨달음을 구하는 자와

이미 죽어서 온 유령체 다름이 없을 터인데

 

이 세상 모든 것이 불성이 있다 함

이것은 ‘원자론’입니다.

 

대원 대자 대비 대성입니다.

 

그러나 원자 이전의 물질 존재성은 이를 오화공도.

즉 오성인 원천적인 물질 즉 ‘신’이라 하는 것입니다.

 

명상을 한다하나 요기를 한다해도

결국 업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이것이 과거 석가모니를 안타까이 한 것이고

예수가 대속하여 허물이 없다 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룬 사역들이 완전한 마침이었다면

이 세상 인간은 병들고 늙고 죽지 말아야 할 텐데...

그리하지 못함이 인간이나 세상을

불완전하게 한 것이겠지요.

 

이 나라 현무도는 일찍이

용문에 이르는 길을 가르킨 것이며

현무의 상징이 ‘용두’와 ‘사두’로 이루어져

몸통은 心 자인 현무. 즉 거북을 말 함이니

이를 가르켜 고운 최치운이 말하기를

‘현묘지도’라 말한 것입니다.

 

이는 현재 방영 하고 있는 뿌리 깊은 나무.

세종이 그 길을 찾아 알게 되고 이 길이 마방진입니다.

 

아마 진작 몇년 전 부터 지식 란을 통하여

마방진에 대해서 기록해 놨을 겁니다.

 

태종과 같이 일자를 놓고 일자를 따르게 하여 다스림이

마방진의 해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답을 구하려 했다면

이 나라에 실전했던 ‘이두’를 다시 만들어 교훈하여

함부로 말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에서

훈민정음이라 하여 이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몸 안의 세포라 해도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 짤라내서 통증 못 느끼니

신경계라 함은 몸 안의 신경계를 신경계라 하며

이는 마치 包(쌀 포)와 같아 방직입니다.

 

육신통이라 함은

육신을 통하여 신통을 이루는 것이니 ‘명’은 도에 있으며

이를 首(머리 수)라 하며, 目(눈 목)이 ‘신’이 거하니

目窓(목 창)이라 하여, 불가에서 육계라 하는 곳입니다.

 

본래 ‘공안’이란 이를 말함이며

천은 칠백공안이 있어

이를 ‘천칠백공안’이라 하는 거입니다.

 

을척은 도가의 칠단 이상이 되어야 다루는 것으로

이를 금척 또는 을척 이라 한 것입니다.

 

반야를 깨달아 마치면 비로소 도가 초입에 들어가니

도가 무엇인 줄 어렴풋이나마 겪어 알게 됨은

이때를 도계 초단이라 합니다.

 

도계 오단 이상이면 육신통을 알게 되고

그러나 도계 사단에서 오단에 넘어서기 힘드니

이는 사단은 사단지에 들기 때문입니다.

 

이 때 비로소 마왕을 친견하여

스스로 항마를 받아야 오를 있는 것이 ‘오단’ 입니다.

 

‘오단’은 ‘묵진’으로 이를 진묵이라 합니다.

 

그러나 반야에서 넘기기 가장 힘든 단계가 ‘색경’이며

거의 색경에 빠져 죽음을 당합니다.

 

색경이란? 심근경색이니 이를 ‘심’고통.

즉 심통이라 합니다.

 

도올 같은 이는 회두라하며

‘회두’란 도가에서 알지 말아야 할 것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이니

이 때는 회두라 합니다.

 

즉 두뇌 테이프가 끊기는 것으로

말하고자 하나 본래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자기도 모르게 전혀 다른 주제를

말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천기문이라

일반적 도가의 수행을 하여 온 이들도

금제 된 금역인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인류에 도움이라 하셨는데

어느 자가 이루어 이를 허락함이

팔만 사천 모공이 대신광을 발하는 것이며

동리 동리마다 대신광이 비춘다 한 것입니다.

 

이를 가르켜 성통공완자라 한 것이며

이때는 인류의 삶과 죽음이

백척간두에 섰다 하는 거입니다.

 

그저 마음만으로도 세상이 ‘공’하여 법성이 ‘공’함은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니

그 마음 어디메 있는줄 조차 모르니

옛 부터 일러 마음이 콩밭에 있다 한 바인데

이를 무지하여 대전을 태전이라 억지하여 말하기도 하며

여기서 마음을 콩밭에 둔 것은 본디 ‘천태’라 합니다.

 

‘치마바위’라 하며 풍수지리 요결에

일찍이 고려 이전부터 이곳을 ‘동산삭월혈’이라 하였으며

만인 지상의 자리라 전하여 현재까지도 전해지지.

 

본디 이화장의 주인이 살던 곳으로

이곳을 도계라 합니다.

 

‘공’함을 일찍이 일원 또는 ‘적멸상’이라 하는데

이는 ‘도솔’이며 허무적멸은 이조에 있다 합니다.

 

이렇듯 ‘도’란?

그 몸에 있으나 그 몸이 곧 소우주요.

그 몸 안에서 소가 가르키는 곳.

그 곳을 일러 玄牝(현빈)이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찾으면 몸 밖의 현빈도 찾으니

이 길이 축자에 있다 함은

세상에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겨났고

빛 이전에 카오스 혼돈이라 하니

이를 천지지근이라 한 것이며

천지지근은 허무지음이라 한 것입니다.

 

이 길은 현지우현이니 중묘지문이라 한 것입니다.

 

^^이 말이 부처도 중생이라 불가에서 전한 바입니다.

 

또한 세상의 윤회를 돌리는 분이

대법륜 좌에 앉아 윤회를 돌리니

천부경에 일묘연만왕만래라 하며

이 나라 경주 석굴암은 이를 방편한 표증 입니다.

 

‘구룡포’는 천자가 입는 옷으로

석굴암의 바라보는 방향은 이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과거 이 나라 이러한 지기가 있음을 알고

이 나라 혈맥이나 기운을 막는 뱅이를 한 것이구요.

 

그러나 몸 안에 박힌 가시도

세월이 지나면 없어지는 것을

그로 인해 혈로가 막히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 나라는 친일파 빨갱이 좌파 우파하나

그리고 수많은 유언비어와

거짓된 삿된 것들이 난무하나

‘정도’는 ‘정’으로 이루어지며

‘사’는 필히 정해진 곳으로 가니

이를 가르켜 ‘사필귀정’이라 합니다.